나에게 묻다

내가 버린 신경 안정제 한 알

by 혜윰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정의하지 않으면,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환상에 산 채로 잡아먹히게 될 거란 걸 알게 됐다."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삶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점점 예민하고, 날카롭고, 우울해진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묻는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왜 너만 그래?"


누군가는 '기분 전환'을 추천한다.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라고.

누군가는 '쇼핑'을 추천한다. 지름신을 영접하면 스트레스가 싸악- 풀린다고.

누군가는 '청소'를 추천한다. 몸을 움직여야 잡생각이 사라진다고.


"살만하니까 저러지."

나 자신 스스로 만들어낸 그 비난의 문장은 어느 날은 아이의 입을 통해 "아, 나도 엄마처럼 학교 안 가고 쉬고 싶다."라는 말로 튀어나왔고, 다른 날에는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 없이 집 안을 둘러보는 남편의 눈빛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나에게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너, 정말 살만하니?"





많은 교외 주부들은 기침약을 먹어대듯 신경 안정제를 복용했다. 어떤 의사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아무런 변화 없이 보내야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럴 때 신경안정제를 한 알 드세요. 그러면 그건 게 무의미하다는 사실에 신경 쓰지 않게 될 겁니다."라고 말해주곤 했다.


베티 프리단 <여성성의 신화>


앞으로의 이야기는 내가 버린 신경 안경제에 관한 기록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버리려고 노력한, 버렸으나 어느새 다시 돌아와 물컵 옆에 아무 일 없는 듯 시치미 떼며 놓여 있는 신경 안정제 몇 알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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