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이름의 유혹

내가 버린 신경 안정제 여덟 알

by 혜윰

지글지글 끓기 시작하는 찌개. 가스불을 끄고 돌아서면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이 보인다. 설거지를 시작한다. 고무장갑을 벗자마자 들려오는 세탁기 알람 소리. 건조기에는 아직 꺼내지 않은 빨랫감들이 한가득이다. 빨래 바구니를 들고 와 거실에 놓는다. 장난감, 색종이, 아무렇게나 놓인 책들로 시선이 옮겨간다. 에라, 모르겠고 앉아서 핸드폰을 집어 든다. 반듯한 정사각형 사진 안에는 각 잡힌 침대와 깨끗하고 환한 호텔방. 푸른 하늘과 맞닿은 풀장과 색색의 미끄럼틀의 사진이 보인다. 이곳이 내가 누울곳이구나. 진정한 휴식! 일상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 곳! 예약을 끝낸 나는 어리석게도, 또 무릎 꿇고 말았다. 여행이라는 이름의 유혹 앞에서.





놀아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쉬지 않고 놀기란 얼마나 힘든가. 그것도 내가 노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노는 모습을 보며 기뻐해 주고, 사진을 찍어주고, 호응해주는 놀기란.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메뉴 따로, 어른 메뉴 따로.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와 밥때를 맞추려는 어른과의 신경 싸움. 하루 종일 물속에서 퉁퉁 부은 발과 손을 침대에 누이며 사진을 업로드한다.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는 여유로운 풀장. 색색의 미끄럼틀이 있는 어린이 수영장의 평화로운 사진을. 당연히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무릇 여행이란 쉼과 휴식이어야 하니까. 그 사진 속에는 하품하는 나, 밥을 더 안 먹는다고 신경질 내는 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시간이 지난 후, 사진을 보며 나는 다시 평화로웠던 그때를 떠올린다. 여행이라는 유혹이 슬그머니 다가오는 걸 모른척하며.


나는 여행이 내 삶의 필수 조건이라 여기는 사람이었다. 일 년에 두어 번씩. 아이가 있으니 해외 휴양지로. 저가항공이 늘어나고 호텔 가격 비교 어플이 생겨나면서 최저가 호텔과 항공편 검색은 나의 취미생활이 되었다. 때로는 육아의 고달픔을 달래기 위해, 때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최대한 싸게 예약할 수 있는 날짜로 여행을 떠났다.


필리핀으로 가는 저가항공일정은 밤 출발-새벽 도착이 많았다. 일을 마무리해 놓고 출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새벽 비행은 지금 생각해도 고개를 흔들 정도로 힘들었다. 다시는 이런 힘든 여정은 안 할 거야, 하면서도 비행기 티켓 가격과 호텔 할인 가격을 습관처럼 검색했다. 사람들의 여행 준비 후기를 보며 나도 여기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툰베리의 연설에 공감하면서도 ‘여행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비행기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남기는지, 사람들의 ‘힐링’을 위해 작은 섬들이 얼마나 많은 쓰레기로 뒤덮이는지 알면서도 그랬다.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런데도, 카톡과 와이파이는 단절하지 않았다. 나의 여유로움, 나의 쉼을 누군가에게는 인증해야 했으므로. 내가 일상을 힘들고 치열하게 살고 있으니 이 정도의 사치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거라 믿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괌 여행을 앞두고 코로나19라는 펜데믹이 하늘길을 막았다. 그리고, 굳이 여행으로 '힐링'하지 않아도 내 삶은 그럭저럭 잘 돌아갔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여행은 나에게 뭘 남겼을까. 넌 이제까지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 정도 보상을 받아야지. 다음 여행까지 또 돈을 벌어야 하니까 또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 어쩌면 그 ‘힘듦’을 가지고 돈을 벌려는 상업적인 메커니즘에 내가 스스로 발을 디딘 것은 아닐까? 돈을 쓴다고, 여행을 간다고 내 삶이 정말 리프레쉬된다면 왜 여행 갔다 온 후에는 또 그렇게 힘이 드는가? 여행 후 몇 달은 카드값 때문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가? (우리가 일 년에 두어 번씩 해외여행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카드 할부'에 있었다. 모아놓은 현금은 여행지에서의 여비로 쓰고, 비행기 값과 호텔값은 3개월 할부로 결제했기 때문에 당장 돈이 없어도 갈 수 있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이며,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가?)


어쩌면 내가 그렇게 여행에 집착했던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놈의 인정. 도대체 나는 '누구에게' '어떤 인정을' 받아야 만족할 것인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이 정도 여행쯤이야, 다녀와도 가계부에 지장 없을 정도로 살림을 잘 꾸려왔다는 한 가정의 '현명한 부인'으로서의 인정. 일을 할 때는 내가 돈을 버니까 이 정도 여행을 갈 수 있는 거고, 그러니 나도 가정의 '기둥'으로 인정해달라는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남한테 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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