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글을 쓴다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다. 특히 주말에.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와 있는 나는 지금 이 문장을 쓰는 순간에도 몇 번이나 멈추게 된다. 남편이 들어와서 물건을 찾고, 아이들이 간식거리를 찾아 기웃거린다. 나는 뭔가 쓰려고 했다가, 모니터에서 잠시 눈을 뗐다가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면, 순간 아득해진다. 내가 뭘 하려고 했었지?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면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집안일도 하지 않고, 아이들이 노는 데 참여하지도 않고, 남편이 찾아 헤매는 저 물건을 찾아주지도 않을 만큼 글쓰기가 ‘가치 있는’ 일인가? 게다가 아무도 나에게 글을 쓰라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남편이 내가 쓴 글을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내가 남편에게 “나, 글을 좀 써 볼까 봐.”라고 말했을 때 남편은 “그래. 정말 좋은 생각이야. 뭐든 해 봐.”라고 했다. 속으로는 ‘어떤 내용 인지나 알고 그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해준다는 게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요즘 남편은 나에게 자주 묻는다. “바빠? 도대체 뭐 해?” 글을 쓰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저녁 준비 좀 도와주지.”라고 말한다. 그럼 나는 잠깐만, 하고 후다닥 마무리할 때도 있고, 노트북을 덮고 미련 없이 나갈 때도 있다. 핑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더 쓸 수 없는.
배윤민정의 <나는 당신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를 읽고 가족의 위계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고 ‘어떻게 저렇게 대처할 수 있지?’라고 감탄하기도 했지만 ‘현실의 나’를 자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과연 나는 호칭을 바꿀 수 있을까. 결혼 초, 나는 남편의 누나를 ‘언니’라고 불렀고 어머니는 그러는 거 아니다,라고 하셨다. 동갑인 남편의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 이름을 이야기하니 또 그러는 거 아니다,라고 하셨다. 시모를 편하게 느껴서 ‘엄마’라고 했더니 친정엄마가 ‘시어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지금은 남편의 누나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남편을 지칭할 때는 아이 아빠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부르는 게 싫다. 왜 이름을 부르면 안 되지? 이름이 닳기라도 하나? 남편의 누나와 친하게 지내라고 하면서 왜 형님이라고 해야 하는 거지? 내 형도 아닌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 내가 잘 몰라서 잘못했구나.라고 여겼다. ‘당연히’ 지켜야 하는 관습이라 생각했다. 그 이유가 구조적 위계질서임을 알고 나니 ‘내 한계’가 뚜렷이 보였다.
작가는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아랫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걸 인정하는데도 왜 자꾸 내가 아랫사람임을 확인시키려 하는 질문과 행동에 화가 났다. 그 이면에 가족, 아니 대한민국의 위계질서가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지 보지 못한 것이다.
나와 남편, 아이 둘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위계’가 분명하다. 나는 아이들이 나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화를 낸다. 남편은 “우리 집 서열 1위는 엄마야. 그러니까 엄마 말 좀 잘 들어.”라고 말하지만 가족 모두 알고 있다. 누가 ‘진짜’ 서열 1위인지.
나의 배우자는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사람이다. ‘나를 위해’ 고기를 손질하고 저녁을 준비한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꼭 해야 되는 일이야? 야채 손질도 좀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은 뭘까. 아마도 가족의 저녁식사 준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집게와 가위를 가져다주고 기어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마무리할 문장을 생각하면서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게 나를 위한 일이니까. ‘행복한 가족’ 안에 속하고 싶으면서도 그게 얼마나 허상이고 찰나인지 절감하기 때문에 나로 살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