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나는 대학졸업 후 들어간 회사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나의 '사수'였다. 내가 생각하는 사수란 내 일을 알려주고,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이제까지 봤던 사람들의 유형에 전혀 맞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에는 완벽하면서, 다른 사람의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항상 '자신의 방식'대로 일했다.
한 번은 내가 외근을 나가서 그 상사가 나 대신 입력을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상세히 알려줬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연히 결과는 반려되었고, 그 탓은 모두 나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는 명절 전에 멀고 먼 지하철 여행을 하고 그 업체까지 가서 잘못을 바로잡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나의 사수였기 때문에, 나는 그와 일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먼저 내 일은 그에게 맡기지 않았다. 그리고 사장에게 바로 보고해야 하는 서류는 그가 '기분 나쁘지 않게' 검토해서 보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내 일이 점점 늘어났다. 나 역시 신입이었기 때문에 일이 익숙하지 않았고, 꼭 해야 하는 일은 미루고 일명 '삽질'만 계속하다가 결국 야근을 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의 '무능함'을 알게 되었다. 그가 어떻게 사장의 '왼팔'이 될 수 있었는지도. 그는 '찌질한 인간'이었고, 동시에 '사장에게 인정받는 유능한 팀장'이었다. 나는 점점 그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사장에게 서류를 올리기 시작했고, 한두 번 아이디어가 채택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나에게 와서 장난처럼 '때리는 시늉'을 했다. 나도 웃으며 받아쳤지만 언젠가는 그가 나를 정말 '때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지만 결국 나를 잘랐다. 그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데, 사장이 나를 어느 정도 신임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장은 '당연히' 나를 해고함으로써 팀장이 일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여하튼 그렇게 회사에서 잘렸다.
결혼을 하고 아줌마의 세계로 들어서면서 종종 그 상사 생각이 났다. 그때는 그가 '새로운 유형'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전형적인 유형'이었다. 내 남편, 네 남편 할 것 없이 '니가 낳은 그 아이는 기꺼이 돌보면서 왜 나는 돌봐주지 않느냐'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집에서는 힘들다고 투정 부려도 회사에는 '가정도 지키고 일도 잘 하는' 능력 있는 사원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저 자기 일만 해내고, 사장의 신임만 받으면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희생하고 뒤치다꺼리를 해 줬다. 그래서 그는 일에 있어서는 그렇게 예민하고 완벽주의자이면서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정 교류에 취약한 '벽'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희생을 먹고 사는 존재로.
우리는 실존하는 여성 개개인의 존귀함보다는 '대문자 여성'이라는 기호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거나, 남성과의 관계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라거나 하는 동질성의 규범에 속박된 채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이러한 남성의 상징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포섭되지 못하는 다양한 여성 개인은 아프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고, 때로는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고, 침묵하면서 신경증적인 상황에 놓이지요. 이런 여성을 현대 사회에서는 '페미니스트'라 부르기도 하고, 시대에 역행한, 불운한 여성이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 김현미,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그러니 이젠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계속 쓰는 수밖에는. 나는 이제 타협할 수도, 웃어넘길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나는 더 이상 막힌 벽과 '대화'라는 걸 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앞이 아니라 위를 바라볼 것이다. 높고 푸르고, 구름이 잔뜩 끼여 흐리고,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고, 태양이 작열하는 하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