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끝에는

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by 혜윰


주말 어느 날. 남편은 아이 둘을 데리고 캠핑을 갔고, 나는 소위 '자유부인'이 되었다. 내가 자유를 느꼈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지금은 나를 '부인'의 삶으로 되돌려주는 "세대 차량이 들어왔습니다"라는 주문이 언제 들려올지 초조하게 기다리며 글을 쓰고 있다.



'자유부인'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달콤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유 남편'이라는 단어는 없듯이 오로지 부인에게만 '잠깐의' 자유가 주어진다는 건, 부인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 아닌가.


'자유로운 삶'이란 뭘까. 나를 억압하고 있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사는 것?

그러면 나를 억압하고 있다는 '굴레'의 정체는 무엇인가.






굴레란 '얽매이는' 것을 말한다. 그럼, 단어 사전의 1번 뜻처럼, 나는 말이나 소 '따위'가 아닌데, 뭐에 얽매인다는 걸까? 내가 스스로 '선택'한, 그래서 내가 어떻게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결혼생활? 아니면 내가 '낳았기 때문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 집에서 '노는'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 '책임'지고 정리해야 하는 살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책임'져주고, 내가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


이제 나는 작은따옴표를 붙여가며 쓴 '책임'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미친다. 다시 생각해 보면 여성이 '책임'질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여성은 소소한 생활 전반의 일들 -하지만 누군가 하지 않으면 결코 삶이 굴러갈 수 없는- 을 책임지지만 과연 결혼생활 유지의 큰 줄기(안정된 급여, '세대주'라는 이름)를 책임질 수 있나?


아니다. 나는 나 혼자도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도 없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도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기어이 물리적인 거리를 넓혔다. 그러나 경제적, 물질적 거리는 그만큼 넓힐 수 없었다. 나는 비상용 아빠 카드를 늘 가지고 있었고, '비상용'이라는 단어의 해석인 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나에게는 내 삶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없었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있었고, 아버지의 나이가 들어갈 때쯤에는 남편이 (남들처럼, 당연히!) 생길 터였다. 어쩌면 그게 나의 '자유'였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나를 자유롭게 해 줄 다른 '남성'을 찾는 것.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표면적으로' 자유를 얻었다. 아파트에서의 편리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간단한' 집안일 후 '쉴' 수 있는 자유. (남편은 새벽에 나가서 한창 일하고 있을 그 시간에!) 내가 원하면 (남편과 스케줄을 공유하고) 친구나 지인을 만날 수 있는 자유. (이때는 친구도 남편과 아이의 스케줄을 확인해야 한다.)




내가 가진 자유를 써보니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별문제가 없잖아!' 남편도 있고, (어느 정도 자란) 아이도 있고, 집도 있고, 자유도 있는 삶. 교과서에 나올 법한 '엄마'의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정작 나는 '살 만하지' 않지?




하지만 이곳에 나의 이름이 어디 있는가? 누군가의 아내, 와이프, 마누라 말고, 누군가의 엄마 말고, 누군가의 딸이 아닌 내 이름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을 들으면 누군가는 (지금 내 머릿속에는 우리 아빠의 찡그린 미간이 떠오른다)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가 문제야? 언제부터 니 이름이 중요했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네가 '해야 할' 역할이 정말 뭔지 모르니?"



그럼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대답한다. "네, 알겠어요. 저는 '인내'와 '참을성'이 많은 아이니까요. 좀 더 기다릴 수 있어요."


그렇게 좀 더 기다리고, 좀 더 기다리고, 기다리며 내 속에 쌓인 (정체 모를!) 화는 또 누군가를 향하게 된다.







여성은 이해한다. 오로지 여성만 전적으로 이해한다. 이 오래되고 흔한, 틀에 박힌 경험이 얼마나 음울한 도깨비불같은 것인지. "가을 바느질이 끝나면, " "아기가 걷기 시작하면, " "대청소를 마치면, " "손님이 떠나면, " "백일해가 다 나으면, " "조금 더 강해지면, " 그땐 시를 쓰거나,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자선단체 활동을 하거나, 교향곡을 익힐 거라는 말. 그때가 되면 행동을 취할 거고, 용기를 낼 거고, 꿈을 꿀 거고, 무언가가 되리라는 말.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라이언 펠프스.


《에비스 이야기》, 1877년 - 약 백여 년 전.


《분노와 애정》 - 틸리 올슨, <작가이자 엄마>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다른 언어, 다른 세계, 다른 시대- 많은 여성들을 떠올린다. 얼굴도 낯설고, 이름도 낯설기만 한.


약 백여 년 전, '머지않아, 잠깐 기다려'라고 혼잣말을 하며 그림을 그리던 붓을 놓았던 엘리자베스를. 그를 '발견해서' <작가이자 엄마>라는 글에 인용해 준 틸리 올슨을. 작가들을 모아 《분노와 애정》이라는 책으로 엮은 모이라 데이비를. 그리고 '한국말'로 나에게 닿게 해 준 김하연을.


여성들은 헨젤과 그레텔처럼 '어리석게' 빵조각을 흘렸지만, 그래서 우리는 또 길을 잃고 말았지만, '머지않아'를 꿈꾸며 빵조각을 흘려두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말을 써야 될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 '현재'의 나가 있다.




아내 말고, 엄마 말고, 딸 말고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