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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ul 05. 2022

내 이름은 키르케

매들린 밀러, <키르케>

"맨 처음 태어났을 때 나에게는 걸맞은 이름이 없었다."

《키르케》의 첫 문장이다. 이름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이름이 나에게 '걸맞은' 이름이 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키르케의 어머니는 님프 페르세, 아버지는 누구나 선망하는 태양신 헬리오스이다. 어머니는 첫 딸인 키르케를 낳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우리 좀 더 괜찮은 아이를 만들어요. " 키르케라는 이름은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는) 이모'가 지어준다. "눈이 노랗고 우는 소리가 특이하고 가늘다"며 "매"라는 뜻의 키르케라고 지었다.

    신들의 기준에서 아름다운 머리칼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목소리도 '인간처럼' 얇았던 키르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이다. 당연하게 키르케는 인정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발 밑에서 떠나지 않고, 동생 아이에테스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른 신들의 비웃음을 듣고도 참아낸다.

     그러던 어느 날, 키르케를 우러러보는 글라우코스라는 뱃사람이 나타난다. 키르케는 글라우코스를 해신으로 만들고, 신이 된 글라우코스는 님프 스킬라를 보고 반한다. 키르케는 본래 모습으로 변하는 약을 호수에 풀고, 스킬라는 괴물이 된다. 그 일로 인해 키르케와 형제자매들에게 '마법'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이 들통난다. 

    키르케는 아이아이에 섬에 '영원히' 갇히는 형벌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으로 인해 키르케는 자신에게도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나는 숲 속으로 들어갔고 이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그곳에서 마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생각보다 마법은 키르케에게 잘 맞는 무엇이었다. "내 어린 시절을 통해 터득한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인내심이었"기 때문이다.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은 어떤 면에서 '쉽게' 무기를 가지게 된다. 그들이 가진 힘은 '타고난'것이다. 그런 면에서 키르케의 마법은 타고난 것이지만, 마법약을 만들고 주술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끊임없이 해내야 하는 '창조'의 행위와도 같다. 이곳에서 키르케는 '듣는'자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나간다. 그러자, 키르케에게는 강력한 힘이 생기기 시작하고, 키르케는 남이 나를 어떻게 말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나중에,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나는 우리의 만남을 주제로 만들어진 노래를 들을 것이다....(중략)... 내가 어떤 식으로 그려졌는지를 접하고 놀라지는 않았다. 오만하게 굴다 영웅의 칼 앞에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하는 마녀. 기가 꺾인 여자들이야말로 시인들의 가장 주된 소재인 모양이다. 우리들이 바닥을 기며 흐느껴 울지 않으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없는 걸까.



    인간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키르케의 섬에도 인간들이 찾아오게 된다. 그들은 당연하다듯이 남자(신)의 자리를 자처하고 키르케에게 음식을 요구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긴 했다. 키르케는 님프(신)이지만 남성 앞에서는 '혼자 사는 여성'일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당당하게 굴 수 있었다. 분노한 키르케는 그때부터 섬에 오는 남성들을 돼지로 만든다. 

    일반적인 영웅 서사에서 영웅들은 한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새로운 모험, 새로운 도전을 한다. (오디세우스도, 걸리버도 마찬가지다. 모험병에 걸린 그들은 집에 돌아오면 오히려 불안함에 떤다.) 하지만 키르케는 섬에 유배되어 있는 존재다. 모든 사건은 누군가, 어떤 신이 찾아오면서 벌어진다. 키르케가 섬을 떠나는 모습은 작품 속에서 딱 두 번 그려진다.

    한 번은 (아버지 헬리오스 신의 허락을 받아) 동생 파시파에를 만나러 간다. 파시파에는 미노타우르스를 낳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키르케는 동생과의 대화에서 내가 '인정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마주한다. 파시파에는 "그들은 네가 착하거나 말거나 관심 없어. 네가 못되거나 말거나 거의 관심 없어. 그들을 귀 기울이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힘이야"라고 신들의 민낯을 꼬집는다.

    두 번째는 키르케 스스로 섬을 떠난다. 이제 아버지를 '호명'할 차례다. 키르케는 "내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라는 헬리오스의 말에 "저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그냥 제 마음대로 살 테니까 앞으로 자식을 꼽을 때 저는 빼주세요."라고 '발화'한다.

    그리고 텔레마코스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한다. 이제, 키르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비로소 키르케가 느꼈던 모호한 감정들은 '언어'가 되고, '말'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키르케' 그 자신이 된다.



그에게 이야기를 했다....(중략)...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은 그렇게 쉽지가 않아서 말을 하다 보면 분노가 나를 덮치고 입안에서 단어들이 뒤엉켰다. 내가 속내를 모조리 토해내는 동안 그는 어떻게 그렇게 끝까지 참고 들을 수 있었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거나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음표가 뜬다. 왜 신화의 여성은 여신 아니면 악녀인가? 왜 항상 선택하는 쪽은 남성신이고, 선택받는 쪽은 인간 여성(혹은 님프)인가? 왜 여성은 늘 납치당하거나 아이(나중에 영웅이 될 '남자'아이)를 낳고는 사라지는가?

    사실 다들 극찬을 했던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기대를 많이 했고, 이틀 만에 다 읽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렇게 신나게 읽을 수 있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신남'의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키르케와 페넬로페가 함께 있는 장면이었다. 매력적인 여자 인물들이 많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당연, 페넬로페이다. 키르케가 떠난 후, 남아서 자신의 삶을 살던 그녀는 더 이상 '오디세우스만을 기다리는 정절의 아이콘'이 아니었다. "어떤 일을 벌이면 끝날 때까지 아무도 그 내막을 모르는" 사람, 키르케의 약초와 마법약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신이 아니라도 된다면 마녀의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이었다. 키르케는 "의지가 가장 큰 요소가 아닌가 믿게 됐다"라고 말한다. 페넬로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의지가 뭔지 알았다."

    개인적으로 의문이 든 점은 결말 부분이었다. 키르케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인간'의 삶을 그리며 마법의 약을 마신다. 텔레마코스는 키르케의 말을 들어준 유일한 동반자였지만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키르케가 텔레마코스에게 "괜찮을 거예요."라는 위로를 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마도 나는 키르케가 세상에 나가서 더 많은 저주를 내리는 걸 보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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