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이길보라 감독의 추천사가 이 책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옮겨본다.
"그 낯설고 새로운 시선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오면서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생각들, 문화들. 그래서 아무 감흥도, 느낌도 없는 것들이 작가에게는 새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작가는 "한국인들은 똑 떨어지는 계량법 대신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 날 때까지 넣어라."라는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길 좋아한다."라는 한국인이라면 모두 공감할만한 문장을 썼지만, 나는 항상 그 놈의 '손맛'이라는 게 싫었다. 당연하게도 '음식은 정성'이라는 말도 세트로 싫다. 그 손은 누구의 손이며, 그 정성은 누구의 정성인 것인지.
그러나 나에게 지긋지긋한 한국 음식들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연결고리가 된다. 작가의 어머니는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한국 음식들로 작가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지만, 오히려 작가는 엄마가 아플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국 요리가 거의 없음을 절감한다. 지난 5년 사이 이모와 엄마를 모두 암으로 잃은 작가는 두 분에 대한 추억, 한국이라는 삶의 정체성에 관한 조각을 찾기 위해 H마트에 온다.
또한 작가는 어린시절 방문했던 한국에서의 일들도 '낯선 시선'으로 재미있게 풀어낸다. 하얗고 작은 얼굴, 큰 눈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모습, 완벽한 딸로 키우고 싶어하는 엄마의 모습. 모두 우리 엄마에게, 또 나에게 묻어 있던 모습이었다. 작가는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한국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며 엄마를 기억하고, 나라는 사람을 서서히 되찾을 수 있게 된다.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언젠가 후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 터였다.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이 문장을 읽고 끊어질듯, 끊어질 듯 끝없이 이어지는 가느다란 선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지금의 내 생각 속에는 엄마에게 받은 생각의 조각들이 남아 떠돌고 있을 것이고, 아이들에게도 그 생각들이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유산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왔고, 그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나도 엄마의 그 청승맞음을 그리워 하는 순간이 오겠지. 많이 울기도 했고, 작가의 솔직하고 자세한 묘사에 감탄하기도 하고,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유산'의 이미지가 계속 떠오르는 매력적인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