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책과 우연들>
글을 써 본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다음 문장을 재촉하듯 무심하게 깜박거리는 커서를 원망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어보며 한 숨을 쉬어본 적도. 더 나아지는 것이 없는 것 같은 절망감 속에서도 다시 읽고 다듬어 발행을 누르는 그 순간들도.
<책과 우연들>에서 김초엽은 '작가의 책상이 필요한 이유'라는 멋진 챕터에서 그 시간들에 관해 이렇게 서술한다.
소설을 쓰려면 오직 텅 빈 스크린-혹은 노트와 나, 단 둘만 마주하는 고독한 시공간이 필요하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건 없건 상관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나에게 완전히 무관심한 군중이어야 했다. 물리적 고립보다는 정신적 고립, 그것이 소설 쓰기의 필요조건이다. 때로는 이 정신적 고립을 쟁취하기 위한 물리적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소설 쓰기를 직업 삼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이 책은 작가의 "읽기 여정을 되짚어가며 그 안에서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탐험의 기록"이다. 읽기는 어떻게 쓰기를 만들까. 작가는 "분명 읽기는 쓰기와 같지 않다. 하지만 읽기는 쓰기로 이어진다. 읽기는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나의 쓰고 싶은 마음을 끌어낸다"고 말한다. 작가가 어떻게 쓰기를 그렇게 성실하게 할 수 있는지, 작품에서 어떻게 그렇게 생생한 이미지들이 떠오를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었던 날이 생각 난다. 모래바람이 서걱서걱, 내 입 속에서 맴도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지구 끝의 온실>, <므레모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는데, 에세이를 보면서 작품의 배경이나 작가의 창작 노트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김초엽은 SF작가이다. 이 책에는 SF라는 '규정할 수 없는' 장르에 관한 작가의 고민과 생각도 담겨 있다. SF가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비인간 존재들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건, '인간만'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다시 고민하게 한다. 작가의 첫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작가의 이 고민이 잘 담겨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스펙트럼>이 참 좋았다.
이 소설들에서도 언제나 우주는 거대하고 자연법칙은 인간에게 무정하다. 하지만 인물들은 두려움에 맞서며 그 우주를 미약하게나마 흔든다. 실패하고 무너지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만 무력함을 넘어선다. 절망 속에서 어려운 낙관을 찾아낸다. 그것은 SF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SF에서 읽고 싶은 이야기였다. 내가 원하던 종류의 경이감이었다. 인물들은 영웅이 아니다. 법칙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 법칙에 굴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러니까 우리는, 그러니까 나는. 얼마나 '내 중심'으로 생각해온 걸까. 최근 일어난, 아니 아직 진행중인 사건들을 보면서 내가 누리는 삶에 얼마나 많은 사람-또한 사람외의-들의 희생이 들어 있는지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이소에 가서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을 사곤 한다. 매일 사고, 매일 버리는 그 굴레 속에서 나는 죄책감을 느끼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그 감정을 모른'척'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 마지막에 친절하고 성실하게 정리해 둔 책 목록처럼, 읽고, 질문하고, 생각하고, 쓰고, 싸우는 누군가가 있다.
작가는 "결코 읽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길도 주지 않었던 책을 우연히 펼쳐드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그 "우연한 순간들이" 자신을 "가장 기이하고 반짝이는 세상으로"데려가곤 했다고. 그렇게 내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되짚어 본다. 충동적으로 구입하고 읽지 않은 책들, 다 읽지 못한 채 꽂혀 있는 책들,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 목록을 떠올려본다. 앞으로 만날 책들이 많다는 사실은 막막하기도 하지만 남은 삶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우리 각자의 앎이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도 오직 홀로만 탁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다행한 일인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