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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an 02. 2023

유령의 눈물

임선우, <유령의 마음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비 아파트>라는 만화가 있다. 각 회마다 다른 유형의 귀신이 등장하는데, 각 귀신에게는 '사연'이 있다. 억울함, 사랑, 복수... 그 강렬한 감정 때문에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게 된다. 그러면 "급하게 죽어버리는 바람에 이승을 떠돌게 된" 유령은 어디로 가게 될까.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에는 급사한 여자가 등장한다. 비가 쏟아지는 날 새벽,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는 길. 건물에서 떨어진 간판에 맞아 죽은 그는 '유령'이 된다. (24시간이 지나면 배꼽에 생기는 버튼을 눌러 사라질 수 있고, 100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여자는 "그 시간 조차도 어떻게 보낼지 막막"할 뿐이다. 결국 발걸음을 옮긴 곳은 동네 카페이다. 

내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빠지고 있었고, 누군가를 미워했으며, 때때로 죽고 싶어했다. 그런 마음들은 어째서 지치지도 않고 계속 이어지는 걸까. 그것을 생각하자 그만 아득해져 이미 죽었는데도 또 한번 죽고 싶었다. 

동네카페에서 한 가수의 콘서트 소식을 듣게 된 주인공은 그곳으로 향하고, 청소기에 갇힌 또 다른 유령을 만난다. "소속사에서 15킬로그램을 빼야 데뷔시켜 준다고 해서 죽어라고 살을 빼다가 죽"은 유령이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만을 가지고 살았는데, 스스로 버튼을 누르면 무효가 될 거라는 청소기유령의 말에 나는 부러워진다. "그런 마음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 끝까지 버티면서까지 지켜 내고 싶은 것이 있는 마음은." 삶에 아무 미련이 없다고 생각해온 주인공은 그 '마음'을 돕기 위해 삶의 마지막 시간을 쓴다. 그러니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결국 ‘돕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러자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수많은 얼굴을, 주말 아침의 영화를,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던 야구공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것들을 마지막으로 떠올려 보기 위해서 나는 눈을 감았다.



'돕는 마음'을 가진 따뜻한 유령이 등장하는, 표제작 <유령의 마음으로>는 어느 날, 빵집 카운터에 엎드려 있던 내가 '나와 똑같이 생긴 유령'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는 주인공은 감정에 훨씬 더 솔직한 유령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된다. 

대체 어떤 유령이 눈물까지 흘리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나는 유령이 아니니까. 유령은 우는 와중에도 그렇게 말했다.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여기까지인 것 같아. 안긴 채로 내가 말했을 때 유령은 그래, 라고 대답해 주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 나는 이 지점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그저 그게 뭔지도 모르고 가능할거라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마음. “그래,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그동안 내 감정을 마주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유령을 통해 나의 솔직한 감정들을 본다. 그리고 인정한다. 나의 마음을. 언젠가는 놓아야지, 라고 생각만 하며 반복해온 일들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를 보내는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바로 '나의 유령‘이다.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분명 따뜻했고, 너무나 따뜻해서 울 수 있었던 눈물”을 가진 유령.



작가의 말에서 "내가 쓴 소설에 조금이나마 환함과 온기가 깃들어 있다면 그것은 전부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진 빚일 것이다."라는 문장에 또 한 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

작품 해설 중 공감 백번 누르고 싶은 문장을 옮겨둔다. 

“덧붙여 두고 싶은 건 어째서 좋았는지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좋은 느낌에서 멀어져 버릴 듯한 부분들이다." 

- 나에게는 <알래스카는 아니지만>에서 백수가 킬러가 된 장면. 이별한 유가 천장을 뚫어버린 장면. “개도,고양이도, 인간도 저마다의 생각에 잠긴 고요한 밤.” 마지막 장면에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너무 행복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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