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윰 Feb 09. 2023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여성들이 고생하며 삶을 일궈온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로 치부된다."

흔하디 흔한 이야기, 하지만 어쩌면 당신의 할머니, 당신의 어머니, 바로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그 이야기들이 모인 책이 출간되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이 수십명의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인터뷰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개인이나 집단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네이버 사전 참고)이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삶이 궁금해서 찾는 경우가 많다. 보통 직업적으로 특징을 가지고 있거나,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인터뷰이(아줌마)들은 의하해하면서 묻는다. "왜 기자님이 나 같은 사람을 찾아왔어요?"


다섯 사람의 인터뷰 중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는 춘자씨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평생 한글을 읽고 쓰는 게 염원이었던 할머니. 나는 돌머리라서 아무리 배워도 안 된다고, 어린 나에게 "그래도 니는 할머니보담 훨~ 낫다."라고 이야기하시던. 


춘자씨는 남편 병간호에 아이들과 시어머니의 돌봄 노동, 각종 농사일까지 도맡아서 해냈다. "그는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오래도록 해 왔다." 이 문장은 '사실'이다. 엄마와 할머니를 떠올려보면, 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해왔고, 지금도 해 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은 노동이 아니다. 당연히 해야하는 일로 치부 될 뿐이다. 


인터뷰는 어땠냐는 질문에 춘자씨는 대답한다. 


"뭐를 알아야 편한지 안 한지 알지. 기분은 좋제. 나 배우지도 못한 인간이 서울서 신문 기자가 와서 이렇게 해주는구나 얼마나 좋아라고. 내가 여태 이렇게 살아와서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뭣이 돌아왔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 마음이 좀 편해."


인터뷰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 내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겸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모두들 엄청난 일들을 해내면서도, '그까짓 별 거 아닌 일'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손가락을 딱 부딪쳐 특정 집단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우주 빌런이 대한민국에 상륙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빌런은 만 60세 이상의 여성들을 잠시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탄에 빠졌을 때,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이 든 여성들이 경제에 기여하는 비중이 크지 않으니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중략)

딱! 60세 이상 여성들이 증발하자, 대한민국은 마비됐다. '필수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 4분의 1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필수노동은 팬데믹 이후 자리잡은 개념이다. 재난 상황 속에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들을 말한다. 가까운 과거를 떠올려보자, pcr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거기서 접수를 받던 분들, pcr 검사 후 면봉과 장갑을 치우던 분들, 그분들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아마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들이 '흔한 아줌마'였기 때문은 아닐까.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은 에필로그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남겨놓았다. 그들은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우리가 특별히 운이 좋았거나 이야기를 끌어내는 재주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시대 여성들은 누구나 대단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두 한 권의 책" 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여자들의 삶이 다 똑같지, 별게 있나?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고.라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그 속에 수없이 다채로운 여러 이야기들이 숨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구나 삶의 관찰자, 기록자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이 기획을 시작했다. 평생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 불린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다. 우리는 글에서 그들의 이름을 열심히 불렀다."


이제라도, 그들의 삶을 찾아 기록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느날 뿅! 하고 나타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은 어떤 식으로든 여러 세대 여성들과 연결되어 있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그 삶 자체, 그저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은'그 삶의 태도가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우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