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칼리,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누군가를 '대상화'한다는 것은,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의 대상으로만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당'은 직업 중 하나일까? 이 책에도 몇 번 등장하는 물음이지만, 장래희망(직업)에 '무당'이라고 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무당은 "신에게 선택받은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 또는 능력', 보통 사람이었지만 신내림을 받아 신의 목소리를 대리하는 사람. 그러나 무당 3년차인 책의 저자는 무당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자신이 '납작'해져버리는 게 싫었다. 무당들은 개인적인 삶이 없을까? 어떤 고민들을 하고 살아갈까? 자기자신이 소모되면 어떻게 다시 채울까? 이런 고민들을 다른 무당들을 만나 나누고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를 썼다.
무당을 다른 직업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무당이라는 직업은 굉장히 신비화 되었지만 사실 평범하고, 반대로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은 평범해보이지만 무척 신비한 것 같아요. 우리가 잘 모르는 대상은 너무 신비롭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고요, 그래서 동시에 신비하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인터뷰를 했던 여섯 무당 모두, 나는 절대 무당(따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무당 이전의 삶'은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6명의 각기 다른 무당이 된 계기를 읽으면서,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이고, 내가 힘듦을 겪을 수록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해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당이 신비스럽게 포장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모성신화'가 전개해온 부분과 어느정도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낳으면 누구나 당연히 '엄마'가 된다고 말한다. '엄마'는 당연히 아이를 사랑해야 하고, 젖을 물려야 하고, 아이를 위해 내 한 몸 기꺼이 바쳐야 한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엄마가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는 명제는 옳지 않다. 신내림을 받았다고 단번에 무당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신내림을 받지 않았다고 무당이 아닌 것도 아니듯이, 아이를 낳았다고 '모성'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도 분명 아니다.
마지막으로, '연대'에 관해 묻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무당 무무는 연대란 책임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정도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일정 부분 연결되어 있고, 차별과 인정의 문제든 자본과 분배의 문제든 기후와 생태의 문제든 나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감각을 놓지 않으면서 내 삶과 내가 돌봐야 할 존재를 계속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일. 온전히 책임질 수 없어도 노력을 멈추지 않으려는 마음이 연대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무당이라는 존재는 개인의 미래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하겠지만, 결국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차별과 낙인이 억울한 귀신을 만"들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기 전에 소수자의 말을 더 많이 들어주기 위해서. 우리 사회를 위해 "함께 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자신의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한을 풀어주는 역할이 무당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한 부분을 읽으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역사가 떠올랐다.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성공한 개인만 주목받는 이 사회속에서 다수의 '소수자'들은 계속해서 변방으로 밀려난다. 무당 무무는 말한다. "계속해서 밀려나는 존재들이 잠시 밀려난 상태여도 괜찮은 피난처를 마련하고 싶었죠. 그게 제가 무당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였어요. "
저도 사실 손님에게 개인적 차원의 노력을 촉구할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손님의 고민이 영적인 원인이나 개인적 고통에서 비롯한다고만 해석하면, 계속 '나'가 너무 중요해지고 개인만 부각되는 것 같아요. 물론 어느 때는 개인의 역할이 중요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개인적 차원의 문제와 사회구조적 차원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해서 영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함께 할지 여전히 고민해요.
나는 점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보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나에게 무당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이 책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