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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Feb 28. 2023

글쓰기가 필연인 누군가에게

<여자를 돕는 여자들>

어느 날 고양이가 다가와 당신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고, 당신 주위를 얼쩡거린다면, 주변 사람들은 당신에게 "고양이에게 선택당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고양이에게 관심이 조금도 없던 당신은, 어느새 어디를 가든 고양이의 존재가 신경 쓰이고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신이 마음을 쏟고 나면, 고양이는 어느샌가 당신을 본체만체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글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루종일 글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데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으면 한숨만 나온다. 내가 글을 더 사랑하게 될수록, 야속하게도 글이라는 것은 내 마음을 이리저리 비껴 어디론가로 날아가 버린다. 마음이 답답한 와중에 나를 도와줄 여자들을 만났다. 인터뷰집 <여자를 돕는 여자들>에서.



<여자를 돕는 여자들>은 핫펠트, 하미나, 서한나 등 나에게 익숙한 이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름도 있었는데 정말 다양한 분야에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에 여성 임원이 당선되면 꼭 따라 붙는 말이 있다.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 또는 이제 유리천장은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 여성들에 비해 너무 많은 남성들이 승진하고, 기사에 등장하곤 한다. 이공계에서 공부하고 있는 하미나와 임소연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공계의 핵심이 능력주의다 보니 많은 여성이 스스로를 갈아 넣어 일해요. 그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죠.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것이 진정으로 평등한 성공일까요. 일류 여성이 잘 되는 건 평등이 아니에요. 이류 여성도 이류 남성만큼 잘 되어야죠. 무엇보다 정말 잘해야 이공계에 간다고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들은 남자아이들은 수학이나 과학을 썩 잘하지 못해도 쉽게 선택하는 반면, 여자아이들은 관심이 있어도 뛰어나게 잘하지 않으면 이공계로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녀들이 의문을 가진 것처럼, 삶의 곳곳에서 그런 의문들이 튀어나온다. 아이 둘과 여행을 하고 있는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남편은요?"이다. 아니, 왜 남편이 어딘가에 (그곳이 여기든, 한국이든) 있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지? 웃으며 한국에서 돈 열~~~심히 벌고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뭔 상관이냐고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여기서 환전하고, 아이들 살피고, 짐 싸고 옮기는 건 모두 난데, 왜 자꾸 남편을 찾는지 정말.. 화가 난다. 





글쓰기라는 게 여성주의와 맞닿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제게 여성주의는 여성을 해방하고, 저 자신을 해방하고, 나아가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해방되는 건데요, 글쓰기는 억압된 상태에서 해방으로 가는 길이라고 보거든요.



또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서한나이다. 자신만의 감성을 글로 풀어내는 게 탁월한데, 고백하자면 내가 그 감성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그래서 나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 분 ㅎ ㅎ 서한나의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들도 인상적이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는 불편한 것들이 있는데, 남들에겐 그게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내가 이상하게 보이는 경험들이 자꾸 쌓이다보면 내 자신을 신뢰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나만 이상한 것 같고, 유난인 것 같고, 남들이 나를 사회 부적응자라고 볼 것 같고.. 그럴 때 글을 어쨌든, 꾸역꾸역, 쓰고 나면 마음이 좀 낫다. 또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느끼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을 때가 많잖아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진짜로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리기도 하고요. 여성으로 살면서 느꼈던 해석되지 않는 것들, 나와 일치하지 않는 세상 등을 글을 통해 혼자 소화할 수 있게 돼요. 누군가에게는 글쓰기가 필연이라고 생각해요. 제 글이 저한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질 때쯤에는 타인이 제 글을 읽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서한나에게 앞으로 어떤 여자들을 돕고 싶냐고 묻는 장면이다. "직면하고 싶은데 두려워하는 이들이요.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자기 때문이 아닌 경우가 많잖아요. 사회가 정한 기준이 불합리하기 때문인데, 그 문제를 자기 안에서 찾는 여자들이 많아요. 저는 그런 여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안의 잠재력과 활력,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일하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온 여성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재밌었던 부분은 그들이 독자에게 공통적으로 "쫄지 말라."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쉽게 주눅 든다. 어디 나가려고 하면 혹시 내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남이 나를 오해하지 않을까. 아이를 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매정한 엄마라고 하지 않을까,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망설이고 '쫀다.' 그런 여성들에게 임소연은 말한다. "가끔 타협해도 괜찮아요.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으면서 주변 여성들과 함께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임윤경 또한 말한다. "쫄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일 아니에요. 절대 쫄 일 아니에요. 여성들이 쪼는 게 지금 화력 막강한 그들이 가장 바라는 일이에요.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누구도 나의 영혼에 손톱만 한 균열도 낼 수 없다는 그 엄연한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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