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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Mar 03. 2023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의 힘

돌봄과 작업 

육아 이야기는 나에게 언제나 궁금하고 반가운 주제이다. 30년 넘게 살면서 생각 한 번 해보지 않았던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게 얼마나 철저하게 외롭고 힘든 일인지, 혹은 힘들긴 하지만 성취감을 느끼고 아이와 교감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를 읽어나가는 게 참 좋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게 뭐가 특별해?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되는 거지. 애 낳을 때 힘든 거 당연한 거 아냐? 그 정도 각오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으려고 했다는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재미없다는 군대 얘기도 영화로 나오고 드라마로 나오고(게다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술자리마다 (당연한 듯이) 회자되는데 왜 아이 낳고 기르는 얘기는 다 똑같다고 치부해 버리는 걸까? 이 책에 소개된 것만 해도 각자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왜 여자들은 엄청나게 고민을 해가면서 자신의 육아와 돌봄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건지.



그런 점에서 첫 작가가 정서경이라는 것에 좀 놀랐고 (누군지 모르고 읽었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헉했음 ㅎ ㅎ) 공감되는 문장이 많아서 형광펜으로 줄도 가득 그었다. 개인적으로는 싸우는 글(??)을 선호하기 때문에 ㅋㅋㅋㅋ 홍한별의 "세상 모든 엄마는 제 자식을 버린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실제의 나는 아이 둘 뒤치다꺼리하는 시종노릇하는 엄마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ㅋㅋㅋㅋ "너네 다 버릴 거야!! 잘 버리려고 키우는 거라고!!"

이제 나는 다른 여자들이 조언을 구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오염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타협해도 괜찮다고, 페미니스트는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고 (사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나라는 존재의 수식어가 아니라 내가 하는 행위의 수식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박사 과정을 밟고 교수가 될 수 있었을까.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민 답은 돈도 아니고 열정도 아니다. '타협'과 '포기', 욕심을 버리는 거였다. 그러니까, 일과 육아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 아니, 일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반대로, 육아에 성공한 엄마는 어떤 엄마인가? 아이가 서울대에 간 엄마? 그러면 육아에 '성공'했다는 말을 붙일 수 있는가? 결국 육아는 성공의 잣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여 성공에 이르는 영웅담은 육아에 어울리지 않는다. 육아의 서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단순해서도 안 된다."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니 이런 여자들이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 사회에서 내 몫 이상을 해내려는 여자들. 마치 늘 쓸모를 증명해야 존재할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계속해서 자기를 몰아붙이는 여자들. 예전엔 그냥 대체로 여자들이 더 근성 있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서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쓸모가 가치를 입증하지 않아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내가 이렇게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필요, 사회의 필요, 공적인 필요에 부응해 내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 여자들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다. 증명하지 않아도, 입증하지 않아도, 논리적으로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당신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충분히 수용받았다면, 당신들은 지금 보다 훨씬 더 권리감 있는 인간들이 되었을 거라고. 그렇게 해서 열심 끝에 마주하는 결말이 번아웃이 아니라 창조적인 삶이 되었을 거라고 말이다. 



이 책을 기획한 김희진 편집자의 글이 나에게 위안을 주어서 좀 길지만 남겨본다. '쓸모'를 인정받기 위해 나 나름대로 버텼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얻고 싶었던 게 바로 그거였다. 일과 육아 모두 성공한 엄마. 하지만 "열심 끝에 마주하는 결말은 번아웃"이었다.


딸은 나와 다른 존재다. 머리로는 알지만 아직 삶으로 실천하는 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공부에 관심을 가지는 "다른 존재" 였으면 좋겠고, 자기의 미래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다른 존재" 였으면 좋겠다. 아마 내 딸이 그렇게 된다면, 딸의 삶은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오래 곱씹다가, 하고 싶은 잔소리를 삼키고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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