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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Apr 09. 2023

리아는 그저 리아일 뿐

앤 패디먼, <리아의 나라>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이 말은 탈무드, 임마누엘, 칸트, 설리 맥클레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나는 자신의 관점만이 옳은 관점이라는 가정과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이 책은 2010년 처음 한국에 소개 되었는데, 절판되었다가 15주년 개정판으로 다시 재출간 되었다. 198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다름'에 대한 무지와 공포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아직도 많은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은 '기록'이다. 리아에 관한, 리아의 나라에 관한 기록이다. 리아는 '몽족'이라는 생소한 소수민족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작가의 친구들은 "뇌전증 앓는 아이 이야기는 딱히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주제가 아닌데 하물며 뇌전증 앓는 '몽족' 어린아이 이야기야..."라고 할만큼 미국은 몽족을 관심에 두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몽족이라는 민족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읽으면서 몽족과 한국의 정서와 비슷한 점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H 마트에서 울다> 등 한국인 이민자의 삶을 다룬 작품에서 왜 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낯설게 바라봤는지도 조금 더 이해가 되었다. 한국의 '민간 요법'들이 미국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도. 




이 책은 리아라는 뇌전증을 앓고 있는 한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점점 범위를 넓혀 몽족이라는 민족, 더 나아가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때로 너무 쉽게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민족에게 "게을러서 그래."라던지 "00사람들은 너무 시끄러워." "예의가 없어."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이처럼 모름은 두려움을 낳는다.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면 쉽게 오해하고 고정관념을 가지기 쉽기 때문이다.  



캉거굿은 '더럽다'거나 '까다롭다'는 말을 빈번히 쓰는 게 실은 "외국에서 온 서구인들이 '차이'나 '타자'를 대할 때의 불편한 마음을 드러낸 것"으로 보았다.

서구 구호기구 직원이 몽족과 마주하는 일은 (우주론, 세계관, 정신, 삶에 대한 감각 등에 관한) 근본적인 차이와 맞닥뜨리는 일이댜. (...) 안타깝게도 (프랑스 평론가인) 츠베탕 토도로프가 일깨워 준 바와 같이 "낯선 사람에 대한 우리의 최초이자 자발적인 반응은 그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열등한 존재라 생각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책에서 마주친 것은 '리아'라는 한 아이라기 보다는 '몽족'이 가진 '다른 문화'이다. 몽족은 아픔을 '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로 혼이 나갔기 때문에 사람이 아픈거고, 굿이나 제사를 지내서(돼지나 대체할 만한 동물을 잡아) 혼을 돌아오게 하면 병이 낫게 된다고 여긴다. 또한 '병'을 대하는 자세조차 다르다.



또 하나 그들과 제가 달랐던 건 그들은 제가 보기엔 큰 재앙이다 싶은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듯 했다는 점입니다. 그 사람들이 보기에 문제는 치료였지 뇌전증이 아니었어요. 저는 발작은 멈춰야 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는 엄청난 책임감을 느꼈는데, 그들은 그럴 수도 있다는 태도였어요. 우리가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다는 식이었지요. 



몽족은 뇌전증의 증상 - 갑자기 뒤로 넘어가면서 발작을 일으키는 것- 이 혼이 나갔다가 들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리아를 영적으로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리아는 '특별히' 더 사랑받는다. 작가는 의사들과 리아의 가족을 인터뷰하면서 "진심으로 양쪽 모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솔직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리아는 그저 '리아'일 뿐이다. 그러나 미국의 '선진' 의학적 시점으로 보면 리아는 "뇌전증 소아 환자"이다. 반면 몽족의 시선에서 리아는 '영적으로 특별한 아이'이다. 그러니까 이 시선의 차이는 리아를 '치료해야 할 존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나눈다. 그러니까 의사의 시선에서는 발작을 일으키는 증상자체를 없애고 '정상적'인 아이를 만드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때마다 약을 먹이고 아이의 상태를 봐야 한다면, 리아의 가족의 시선에서는 발작을 일으키는 것 자체는 '영적 교류'이기 때문에 생명이 위험할 정도가 아니라면 그 증상까지 없앨 필요는 없다는 태도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당연하다'라고 생각해왔던 의학적 기준들과 관습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대적이고 깨끗한 병원, 원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각종 검사들, "의료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K-방역, K-의료 시스템은 과연 '누구'에게 '최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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