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

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by 혜윰

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친한 친구와의 만남. 결혼 후 우리의 대화 주제는 ‘남편과 아이들’로 자연스럽게 좁혀졌다. 집안 살림은 그렇다 쳐도 아이들 양육은 함께 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 대화가 통하지 않는 답 없는 남편과는 헤어지는 것 밖에 해결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내가 말했다.

“그래도 난 이혼은 자신이 없어.”

친구가 놀라며 되물었다.

“네가? 넌 충분히 혼자 살 수 있는 직장도 있는데 도대체 왜?”

글쎄, 나는 두루뭉술한 이유를 대며 머뭇거렸다. 나조차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당장 남편 없이 살 수 있을까. 친구가 말했다.

“네가 아직 남편을 사랑한다는 증거야.”




사랑.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다양한 사랑의 형태와 크기가 있을 것이다. 에로스와 아가페. 그중 남편에 대한 나의 사랑은 어떤 식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과연, 그 사랑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 어떻게 변해있을까.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좀 이상하게도 대학시절 한 강의실로 되돌아간다. 무슨.. 철학 시간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당시 내가 이해한 바를 요약해보자면, 한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그 사람에 대한 ‘환상’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사랑은 착각이며 그 환상이 깨지면 사랑도 깨지는 거라고. (좀 더 복잡한 상관관계가 있었겠지만 나는 단순히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넌 나와 사랑에 빠진 게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나의 환상과 사랑에 빠졌다고 여기는 거지.”라는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해댔는데, 어쨌든 이 이론에 따르자면 내가 사랑에 빠진 남편의 ‘환상’은 바로 ‘친절한 남성상’이었다.

그러면 나는 왜 ‘친절함씨’와 사랑에 빠졌을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남성이 별로 없었나? 그랬던 것 같다. 경상도 지방에서 자라온 나는 (특히 친척 어른들과 사촌들) 내 의견을 듣지도 않는 경험을 밥 먹듯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은 내 생각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잘 들어주었고, 모든 면에서 친절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정말 ‘모든 면’에서 친절할 수 있나?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그 친절함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최소한의 할 일만 하는 아저씨’로 살아가고 있다. 사랑이라는 게, ‘결혼 생활을 유지할 만한 서로의 노력’이라면 나는 저 아저씨를 사랑하는 게 맞다. 그러니까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쓰고 있겠지. 아이들의 일상유지와 가사노동 사이에서 나는 자주 화가 나고 무력감을 느끼지만 아직은 결혼제도라는 ‘긴 목줄’을 풀어버릴 생각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고통과 해방, 외로움과 자유, 나 다움’이라면 나는 내 글을 사랑하는 게 맞다. 그러니까 이렇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글을 쓰고 있는 거겠지. 내가 하고 싶어서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러니까 남편보다는 글을 ‘더’ 사랑한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비교가 될만한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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