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작가의 <주문에 걸린 마을>은 지금은 고전이 된 세계 여러 나라의 동화 속 배경을 건망증 작가와 재빠르고 똑똑한 쥐, 깜지가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이 여행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린 시절, 추억의 동화 속 주인공들도 다시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쓴 작가의 숨겨진 이야기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여행을 거듭할수록 깜지는 그들로부터 끈 달린 바지, 모자, 노트, 깃털 등을 선물 받는데 마치 게임 아이템을 장착하는 기분이 들어서 재밌다. 고전 동화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서 또 다른 재미난 이야기가 탄생했다.
첫 번째 여행지. 런던 켄싱턴은 궁금하면서 아쉽기도 했다. 런던에 갔을 때 해리포터의 배경이 된 킹스크로스역은 가봤지만, 켄싱턴 공원은 가볼 생각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유럽여행을 간다면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터팬 동상도 구경하고 피터팬이 태어났다는 새들의 섬도 가보고 피터팬의 원서도 사고 싶어졌다.
두 번째 여행지, 피터 래빗의 배경이 된 윈더미어 지방도 꼭 가보고 싶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이야기는 영화로 보고 작가의 전기에 관한 그림책도 읽어보았다. 피터 래빗은 청소년 시절, 문구용품의 디자인으로 고르곤 하던 캐릭터여서 더 친숙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어린 시절을 보내던 지역이 재개발을 추진하자 전 재산을 모아 땅을 사들여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냈다고 한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곳도 그 시절처럼 지켜낼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힘이 있을까 생각하니 작가가 정말 위대하게 느껴졌다.
세 번째 여행지는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태어난 스웨덴의 작은 시골마을, 빔메르뷔였다. 나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소제목, <주문에 걸린 마을>처럼 모두가 동화 속 삐삐처럼 상상의 나라로 빠져든 기분이었다. 커다란 말을 유모차에 싣고 가는 삐삐, 해먹에서 노는 삐삐, 상점에서 일하는 삐삐의 여러 가지 모습이 바로 삐삐가 살고 있는 동화책 속으로 여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는 꼭 삐삐와 친구들이 놀던 뒤죽박죽 별장에서 사진도 찰칵 남겨보고 싶다.
네 번째 여행지는 피노키오가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콜로디와 피렌체였다. 건망증 작가와 깜지는 콜로디 마을을 둘러본 후, 피렌체로 향하는데 피렌체를 여행하던 추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내가 베네치아에서 출발하여 피렌체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골목길에서 피노키오 목각인형을 정말 많이 봤다. 그래서 난 그만 피렌체가 피노키오의 도시인 줄 착각하고 말았는데 사실은 피렌체와 가까운 작은 마을이었던 콜로디가 피노키오가 탄생한 곳이었던 것이다. 무튼 건망증 작가처럼 우피치 미술관에 갔었는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보고 사진으로도 남겼지만, <봄>은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건 내가 그 당시 <봄>이라는 그림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래서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하는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피렌체도 다시 여행하고 싶고, 그때엔 꼭 피노키오가 탄생한 콜로디 마을도 둘러보고 싶다.
다섯 번째 여행지는 안데르센이 태어난 마을, 덴마크의 오덴세다. 안데르센의 동화 중 가장 가슴 뭉클한 이야기는 <미운 아기 오리>다. 오리들 사이에서 크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따돌림과 구박을 받는 오리는 사실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백조였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은 다 읽어보았을 것이다. 외톨이였던 안데르센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데, 실제로 안데르센은 가난한 구두장이의 아들로 소외되고 쓸쓸한 청년시절을 보내다가 장례식 때는 국왕까지 와서 추모할 정도로 덴마크 국민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나도 지금은 버림받은 아기 오리처럼 웅크리고 있지만, 언젠가 백조처럼 멋진 날개를 퍼덕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깜지가 만난 한국인 입양아 한스는 깜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깜지, 넌 아직 모르는구나! 네 엄마가 쓰려는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어도, 너 자신의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는걸. 오늘만 해도 넌 엄청난 일을 겪었잖아. 그게 바로 네 이야기야.”
깜지는 건망증 작가가 노트에 그려놓은 작은 생쥐다. 생쥐는 엄마 몰래 살아 움직이며 건망증 작가와 함께 여행 중이다. 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엄마가 써주길 바라며. 그러나 한스는 이미 이야기는 진행 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 <주문에 걸린 마을>을 읽고 있는 것처럼. 문득 이어령 작가님이 ‘우리의 삶은 이야기’다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진짜 럭셔리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고 말씀하신.
여섯 번째 여행지는, <브레멘 음악대>와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배경이 된 독일의 브레멘과 하멜른을 여행했다. 초등학생 시절 읽었던 이야기라 가물가물하지만, 꽤 재밌고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이 여행지에서 깜지는 이야기꾼인 ‘에어챌러’와 까만 쥐의 대화를 엿듣는데, 실제로 <브레멘 음악대>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쓴 그림형제는 에어챌러로부터 이야기를 수집해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건망증 작가도 이야기꾼이고 그림형제도 이야기꾼이고 이 책을 쓴 황선미 작가도 이야기꾼인데 나도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수집하고 들려주는, 또는 쓰는 이야기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곱 번째 여행지는, 다시 스웨덴이다. 이번엔 <닐스의 모험> 이야기를 따라서 여행을 한다. 스웨덴의 유명한 동화작가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만 알고 있었는데 <닐스의 모험>을 쓴 셀마 라게를뢰프도 스웨덴 동전에 얼굴이 새겨졌을 정도로 사랑받는 작가라고 한다. 전 세계에 번역된 <닐스의 모험>을 왜 몰랐을까라는 탄식을 하며 꼭 애니메이션도 보고 동화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작아진다는 설정이 안데르센의 엄지공주를 떠올리게 했다. 장난꾸러기가 마법에 걸린 채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모험이라는 키워드는 비슷한 것 같다. 환상적인 스웨덴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동화로 셀마 라게를뢰프는 이 작품으로 스웨덴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건망증 작가와 깜지의 여행기는 마무리된다. 건망증 작가는 아마도 황선미 작가의 분신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각 이야기별로 마지막장에 황선미 작가의 여행 사진도 실려있어 친근하고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황선미 작가는 정말 글재주가 뛰어나고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 풍부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 실린 동화작가들 못지않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세계적인 작가인 황선미 작가님과 함께 세계의 동화 배경지를 여행한 행복하고도 달콤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