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어 세이들러의 <뉴욕 쥐 이야기>는 황선미 작가의 동화 창작 강의에서 추천받고 읽게 되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책은 어린이책도 될 수 있고, 어른 책도 될 수 있는 그런 책이다.”라는 토어 세이들러의 말처럼 이 책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이 읽어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도 재밌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어느 나이대가 읽어도 재밌고 유익하다는 점이 이 동화의 매력인 것 같다.
<뉴욕 쥐 이야기>는 하수구에 사는 쥐, 몬터규에 관한 이야기다. 몬터규네 가족은 부둣가에 살며 동전을 모으는 다른 쥐들과 달리 더럽고 냄새나는 하수구에 살며 앞발로 이상한 것을 만든다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엄마는 딸기와 깃털로 그림을 그리고 모자를 만들고 아빠는 진흙성을 만든다. 몬터규는 조개껍데기에 그림을 그린다. 이야기에 더 몰입하고 빠져들 수 있었던 건 문득 우리 가족이 생각나서였다. 건축일을 하는 아빠와 수영을 좋아하는 엄마,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내 동생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꼭 이 몬터규 가족 같았다. 이야기 속 쥐들이 다들 동전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것처럼 한국은 부동산 공화국인데, 우리 가족은 그런 세태에서 비켜나 있는 점이 공감이 갔다. 그래서 놀림을 받고 외톨이처럼 사는 몬터규를 더 응원하면서 읽게 됐다.
몬터규는 우연히 양반 가문의 아리따운 아가씨 쥐, 이자벨을 만나 목숨을 구해준다. 사실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흔하디 흔한 레퍼토리 같지만, 이 이야기의 차별점은 몬터규는 단순히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는데서 그치는 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자벨은 몬터규의 조개껍데기 그림을 보고 그의 재능을 알아봤고 그를 도와 쥐들을 몰살시키려는 인간들로부터 수많은 쥐들을 구해낸다. 이자벨의 약혼자는 목숨을 걸고 인간들에게 몬터규의 그림을 판 초라한 꼴의 이자벨을 문전박대한다. 이에 실망한 이자벨의 마음은 몬터규에 대한 진실한 마음으로 발전한다. 이로써 몬터규는 영웅이 되었고 사랑과 명예를 모두 쟁취할 수 있었다. 자신이 왜 조롱과 비웃음을 사는지도 모른 채 아랑곳 않고 몰두하던 예술 작품이 세상을 구하고 몬터규 개인에게는 사랑과 명예까지 안겨준 것이다. 뭔가 판타지스럽지만 충분히 현실사회에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야기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 용기를 불어넣는다.
혹시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을까 가슴을 졸이며 봤지만 행복하게 막을 내려서 너무나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뉴욕에는 실제로 쥐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골칫덩어리라고 한다. 작가는 이런 하찮고 귀찮은 쥐들에게서 이야기를 상상해 내고 쥐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하수구 쥐를 주인공으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작가가 사회의 구석구석진 곳까지 시선을 마주하며 따스한 희망의 숨결을 불어넣은 것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에 배우 정해인의 <걸어보고서>를 보며 뉴욕 여행의 로망을 꿈꿨었다. 그때는 햇살 가득한 센트럴파크의 여유를 따라가며 보았다면, 만약 내가 언젠가 뉴욕 여행을 가게 된다면, 거리거리에 숨어있는 쥐들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건, 작고 힘없고 더럽다고 여겨지는 불청객들도 제 나름의 삶의 이유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깨달음 아닐까. 토어 세이들러의 <뉴욕 쥐 이야기>는 세상의 편견과 차별, 혐오에 저항하는 이야기며 몬터규와 이자벨의 사랑 이야기이며 예술에 대한 찬사를 담은 이야기다.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환상적인,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추천하는 동화이자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