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아가페적 사랑, 에로스적 사랑, 플라토닉 사랑, 필리아적 사랑 등.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아가페적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문화비평가이며 사상가로 대표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가 있다.
톨스토이의 단편선은 2000년대 초반, MBC! 느낌표의 추천으로 사서 읽게 되었다. 열여섯의 나이에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나에게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었으니깐. 그때 즈음 세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우리나라에도 한일월드컵 시기에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발생해 꽤 침울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은 이렇게 전쟁과 아픔, 상처로 얼룩져있다. 또한 가난과 고통, 배척, 폭력도 만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톨스토이는 57살에 이 소설을 발표했다. 러시아정교회의 신앙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 중요함을 설파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설은 골목에 벌거벗은 채 굶주리고 있는 나그네 미하일을 가난한 구두장이 세몬이 집으로 데려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아내 마트료나는 처음에는 마구 화를 내지만 곧 따듯하게 대접하고 그들 부부와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된다.
(스포일러 있음)
오만한 신사가 가죽을 맡기며 구두를 만들러 찾아오기도 하고, 쌍둥이 소녀의 신발을 주문하는 아주머니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미하일은 세몬의 기대 이상의 실력을 발휘해 흡족하게 한다. 그리고 아주머니와 두 아이가 떠나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의 등 뒤로는 휘황찬란한 빛이 보인다. 그는 사실 하느님의 벌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였던 것이다. 이제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으니 돌아간다는 것이다.
세몬이 미하일을 길에서 만났을 때 그냥 지나쳤으면 어떻게 됐을까? 미하일은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기회를 얻었을까? 세몬은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죽지는 않았을까? 미하일은 세몬과 살면서 세 번의 미소를 보여준다. 그때마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건 바로 하느님이 가르쳐주고자 한 것이 ‘사랑’이었음을 말한다. 마트료나는 미하엘이 처음 집에 온 날, 투덜대면서도 그를 위해 식사를 대접한다. 오만하고 무례한 신사는 구두를 주문하고는 돌아가는 길에 바로 마차에서 쓰러져 죽는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각박한 인생을 보여준다. 두 아이를 데려온 아주머니는 자신의 친딸도 아니면서 극진한 사랑으로 보살피며 귀족 신사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두 아이는 비록 부모님이 안 계시지만 사랑이 있다면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한국사회는 물질만능주의와 능력주의, 성공에 대한 신화로 가득하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감과 깨달음을 주는 것은 현시대를 사는데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각박하고 경쟁적이고 차가운 관계가 주를 이루는 세상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간의 따뜻한 정과 사랑, 인류애임을 느끼게 해 준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 안에 거하시게 하며 우리 또한 사랑의 존재로서 세상에 사랑을 베풀도록 만드셨다. 사랑이 없다면 날개가 부러져 추락한 천사, 미하일처럼 벌을 받고 깨달음의 고통을 겪어야 할지 모르겠다. 겪어보기 전엔 알 수 없다지만,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온몸으로 느껴보는 건 어떨까? 사람은 결국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