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이 바라다 보이는 문학관에서 동시를 읽고 쓰고 있다. 안도현, 이안, 송선미, 유강희, 임수현 시인 등이 강의를 해주셨다. 처음 동화를 배울 때도 동화는 소설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는다는 말에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동시는 동화보다도 더 변방에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예쁘고 가슴 찡한 동시를 쓰는 시인들이 많다. 나도 언젠가 그런 동시를 써보고 싶다. 안도현 시인분께 추천받은 동시 한 편과 안도현 시인의 동시 한 편을 소개한다. 안도현 시인은 동화 같은 소설, 소설 같은 동화 <연어>(15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함)와 시 ‘너에게 묻는다’, ‘스며드는 것’, ‘우리가 눈발이라면’ 등으로 유명하다.
봄눈 - 유희윤
"금방 가야 할 걸
뭐 하러 내려왔니?"
우리 엄마는
시골에 홀로 계신
외할머니의 봄눈입니다.
눈물 글썽한 봄눈입니다.
이 시는 외할머니를 둔 아이나 멀리 타지로 시집간 엄마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명절 때 외에는 몇 번 찾아뵙기가 힘든 가정도 많다. 그런 엄마를 아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시이다. 자신의 엄마가 외할머니에게는 봄눈 같다고 비유를 했다. 봄눈은 아주 잠깐 내렸다 사라진다. 내리자마자 순식간에 녹는 봄눈처럼 엄마도 외할머니에게는 잠깐 와서 반짝이다가 금방 떠나는 아련한 슬픔 같은 존재라는 것을 담아낸 시가 가슴 먹먹한 울림을 준다. 이 동시의 시적 화자인 아이도 언젠가 자신의 엄마에게 봄눈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어 더 큰 울림을 준다.
나이테 – 안도현
나무속에 숨어 있는
나이테
안에서 밖으로
퍼져 나간 자국
그랬지, 그날
네 손을 처음 잡았던 날도
내 몸 안에서 밖으로
징 소리가 퍼져 나갔지
나무의 나이테에서 기발한 착상으로 설렘을 표현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순간의 벅찬 감정을 나무의 나이테가 한 해 두 해씩 자라나는 모습에 빗대어 표현했다. 징소리가 울려 퍼지는 청각적 심상을 나이테의 성장이라는 시각적 심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말로 하기 힘든 순간의 두근거림이 생생하게 살아서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다. 다들 이런 시처럼,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순간, 몸 안에서 징소리가 퍼지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초등학생 시절, 동시 숙제로 시를 써서 냈을 때, 내가 제출한 동시를 보고 담임 선생님께서는 예쁜 시어만 골라 쓰는 건 동시가 아니라고 지도해 주셨다. 10살 어린 나이에는 그저 예쁜 말들의 나열이 동시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시란 단순히 예쁜 말들만 늘어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순간 가슴 한 구석이 찡해오는 게 독자의 마음을 울릴 수 있구나 하는 게 느껴진다. 정말 좋은 시란, 읽는 순간 묘한 감동이 전해져 오는 시인 것 같다.
나는 시를 참 좋아했었다. 시집을 사서 마음에 남는 시를 블로그에 옮겨 적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를 쓰고 싶었다. 아직은 서툰 점이 많은 시인이지만, 꼭 아름다운 시 한 편 남기고 싶다. 시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의 마음도 촉촉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