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선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비 Nov 03. 2024

도시에서 숲을 꿈꾸다

    

내가 숲을 밟을 기회가 언제가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나는 숲을 가까이할 기회가 많지 않다. 가장 최근에, 개인적으로 숲에 갔던 기억이 작년 여름 제주도 여행 시 비자림에 갔을 때이다. 좋긴 했지만,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 그건 산책 외에는 숲에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 가족이 1~2시간 만에 너무 빨리 둘러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만큼 숲이 친숙하지 않았다. 숲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 많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동식물을 관찰하고, 스케치를 하고, 열매를 줍고, 밤하늘에 별을 바라보는 일 같은 것... 실제로 어린이들과 숲으로 체험학습을 다녀왔을 때 숲 해설가 분이 다양한 활동을 준비해 주어서 무척 알찬 시간을 보냈었다. 다만, 1회 적인 체험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스며들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동네에서 산책을 하려고 해도 마땅히 산책할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때는 집 근처의 학교 운동장을 걷곤 했지만 언젠가부터 학교 운동장도 일반 시민에게는 개방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주변에 공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산책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이렇게 삭막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녹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면서 몇 년 전에 다녀온 런던의 수많은 공원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이드파크, 그린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프림로즈 힐 등을 걸으며 나는 런던의 청량한 공기를 맘껏 만끽했었다.      


런던 프림로즈 힐 (2016년, 직접 촬영)
프림로즈힐에서 바라본 센트럴 런던 (위키백과 사진)



런던은 영국의 수도니깐 한국의 수도인 서울과 비교해야 할까? 하지만 부모님 댁이 경기도인 나는 서울에 종종 가지만 그렇게 공원을 자주 본 것 같진 않다. 실제로 서울의 많은 공원을 가보기도 하고 들어보기도 했다. 서울숲, 남산공원, 올림픽공원, 선유도공원, 여의도공원, 한강공원 등등. 하지만 런던의 공원들과 달리 서울의 공원은 주로 주거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많이 있고, 높은 지대가 많아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서울에서 10개월 정도 살아보았던 나는,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공원과 한강공원 외에는 쉽게 가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에 비해 런던은 그야말로 발길 닿는 곳마다 크고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어서 생활의 한 부분과 같아서 부러웠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카페문화가 발달한 것도 벤치나 공원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고등학교 한국지리 시간에 우리나라 국토는 면적의 70퍼센트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고 배웠는데 정작 사람들은 숲을 가까이하기가 쉽지 않은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자원이 희소한 나라에서 대부분 대도시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장시간 사무실에 앉아있으니깐 말이다. 나는 친구의 아들이 한 달에 백몇십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숲 유치원에 다닌다고 하여서 놀랐었다. 어릴 적에는 언젠가는 물을 사먹게 된다고 해서 놀랐었는데 이제는 숲을 밟을 기회도 돈을 주고 사야하는 건가란 생각에 씁쓸했었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사는 마을이 곧 숲이고 들판이고 놀이터였는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살던 고향도 지금은 공장도 많이 들어서고 개발이 되어서 내 어릴 적과는 또 다르기 때문에 안타깝다.


얼마 전에 다큐멘터리 <누구나 가슴속에 새 하나쯤 품을 수 있잖아요>를 봤다. 시골의 분교 아이들이 한 여대의 탐조 동아리와 함께 숲에 들어가 새를 탐구하는 내용이었다. 문득 내가 근무하는 학교 트리하우스에 산비둘기가 날아와 알을 부화시킨 일이 떠올랐다. 트리하우스 하나 지었을 뿐인데 새가 찾아온 것에 전교생 및 온 선생님이 들떴던 일화였다. 이렇게 숲과 나무, 자연을 가까이하면 반가운 소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어쩌면 우리는 콘크리트와 도시 소음, 공해로 인해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숨 쉬던 것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런 의미에서 숲은 우리가 소중히 가꿔야 할 인간의 보물이 아닌가 싶다.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인간성이 황폐해진 황무지에 수십 년간 꾸준히 나무를 심어 숲으로 탈바꿈시키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변화시킨 한 노인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한때는 내가 노인처럼 되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기도 했었다. 직접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꾼 건 아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관심을 갖고 숲을 조성하는 좋은 활동을 하는 기업을 돕고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된다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언젠가 우리나라 도시 곳곳에도 런던의 수많은 공원들처럼 초록색의 나무로 가득하기를 꿈꾸었다.      


그를 위해 나 또한 조금씩 노력하고 싶다. 얼마 전에는 제자들과 함께 대구에 있는 수목원에 다녀왔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나무들이 저마다의 명패를 안고 서있었다. 문득 대학 시절 내 나무를 하나 정해 탐구보고서를 작성했던 일도 떠올랐고 1학년 아이들과 학교 내 내 나무 정하기 놀이를 했던 일도 떠올랐다. 그런 일들이 하나하나 추억이 되어서 나무에 대한 좋은 기억을 심어줬다. 쉘  쉴 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동화처럼 우리에게 나무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이런 나무를 더 가까이하기 위해선 숲과 나무에 대한 관심과 보호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숲이 많다고 하지만 정작 가까이서 이름 부르고 친해질 기회는 많지 않은 존재. 이제 어린이고 어른이든 간에 그 숲을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방에는 상대적으로 공원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숲이 부족하다. 도시 곳곳에 수많은 공원과 숲을 조성했으면 한다. 또한 시민들도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니고 공원에 보이는 쓰레기를 줍고 나무를 심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가 곧 자연의 일부고 자연은 늘 사람들과 함께해 왔으니깐. 가까운 공원에 자주 나가거나 주말마다 숲으로 여행을 떠나고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한다면 비싼 돈 들여서 숲 유치원에 보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굳이 캠핑 같은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자연을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시대에 숲과 자연을 가꾸는 일은 곧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한 일이다. 우리 모두 숲과 나무, 자연, 그리고 공원이 많아지기를 꿈꾸며 아름다운 숲 가꾸기에 동참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 속에서의 여유와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