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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Nov 10. 2024

따뜻한 시구 속에 담긴 삶의 무게

남호섭 시인의 동시집 <벌에 쏘였다>

남호섭 시인의 <벌에 쏘였다>는 시인의 소개부터 흥미로웠다. 시인이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간디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해서다. 검색해보니 현재는 간디학교의 교감 선생님이라고 한다. 간디학교는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교가로 유명하다. 한때 제도권 학교가 너무 힘들 때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를 기웃거린 적도 있어서 더 반가웠다. 학교가 정치적 물결에 휩쓸릴 때 헤쳐 나간다는 게 쉽지 않았는데 이런 좋은 시집을 써주신 시인과 함께하는 학교가 있다는 것이 교육에 대해 안심하게 만들어준다. 

     

이 시집이 좋은 이유는 아이들을 마냥 순진무구하게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서 지켜주고자 한다. 그러나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면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기 쉽지 않고 삶의 가치관이나 바른 철학을 세울 기회를 앗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동시집은 어린이들에게 한국의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세계와 자연으로까지 뻗어나가 전 지구적으로 그리고 인류애적인 사랑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순수한 어린이의 여린 마음과 시골 마을의 힘없는 노인들부터 남북분단의 고통 및 은폐됐던 학살, 전쟁,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 동물과의 교감,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어머니의 자주독립정신 등 넓은 스폑트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중 권정생 동화작가의 일화를 다룬 <조탑리>와 숲속의 새를 묘사한 <새들도>와 병원의 외로운 노인들의 이야를 다룬 <455년>과 수달의 모성애를 다룬 <수달>, 지리산 외공리 양민 학살을 다룬 <구덩이 속에>를 이 시집의 대표시로 꼽고 싶다.  

    

그 중 <새들도>와 <455년>, <수달>을 소개한다.     

 

새들도   



새들도 숲에서는 

걷는다.     


날개 접은 채

낙엽 밟는 소리 

    

노래하거나

울지 않아도

때로는 온 숲을 깨운다     




나는 새들도 숲을 걷는다는 표현이 정말 좋았다. 숲을 걸었을 때 다람쥐가 잽싸게 달려가는 모습을 포착했었지만 새가 걷는 모습을 관찰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다음에 또 숲속을 걷는다면 새가 걷는 장면을 관찰하며 새가 온 숲을 깨우는 모습을 생생하게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하거나 울지 않아도 걷는 것만으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고 온 숲을 깨우는 새의 발걸음이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455



산청 복음병원 305호에는 

버스에서 넘어져 허리 다치고

안방에서 엉덩방아 찧어 엉치뼈 금 가고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어깨뼈 부러진

할머니 환자만 여섯 명     


유리처럼 깨지고 금 간 뼈들이

더디게 아물어 가는 동안

물약 똑똑 떨어지는 약병을 매달고

아들 자랑 딸 자랑을 펼친다.     


침대 이름표 나이를 다 합해 보면

사백쉰다섯 살,

아들딸 낳고 키워 낸 역사가

조선 왕조 오백 년만큼이나 깊다.      


텔레비전 연속극보다 

더 재미있고 때로는 눈물 나는

할머니들 얘기가 끝나고

병실에 불이 꺼지면     


자랑 속 주인공은

아무도 할머니들 곁에 없다.     




시의 제목 455년은 병실에 있는 할머니 환자 여섯 명의 나이를 합한 숫자다. 조선왕조 역사만큼이나 긴 생애를 살아온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때론 재밌고 때론 눈물 날 만큼 구수하고 정겹지만 병실에 불이 꺼지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쓸쓸함만 더해진다. 병원에서 일했던 엄마의 말씀으로는 보호자가 없는 노인은 더 푸대접을 받아서 안쓰러웠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가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병들고 아프고 비참해지는데 그 마지막을 자식 자랑으로 이겨내 보려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과연 이게 누구 잘못일까? 이런 생각이 든다. 유쾌함과 대비하여 쓸쓸함과 절망의 아이러니를 극대화하는 묘사가 더 가슴을 울렸다. 우리 가족부터라도 그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더 따뜻하고 건강한 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달

-『삼국유사』에서 

    

한 젊은이가 시냇가에서 수달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거죽과 살을 발라내고는 뼈는 나무 밑에 버렸습니다. 다음 날 나무 밑을 지나는데 뼈들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는데 바닥에 긁힌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작은 굴속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굴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뼈들이 새끼 수달 다섯 마리를 끌어안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귀여운 수달의 거죽과 살을 발라낸다는 두 번째 문장부터 슬프고 충격적이었는데 <삼국유사>가 쓰인 시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싶다가도 마지막 문장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자기 새끼를 돌보려고 죽어서 뼈만 남아서도 새끼를 끌어안고 있는 수달의 모성애가 전율을 일으켰다. SNS에 올라온 동물들 영상을 보면 우리보다 작고 하찮아보이는 동물들도 감정이 풍부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애교와 사랑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기에 이런 글을 적는다는 게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동물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자라고 말하고 싶다. 이 시는 그러한 메시지를 하룻밤 사이의 일화로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동시집은 전체적으로 따스하면서 사회 고발적이기도 하고 정의를 부르짖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읽는 동시의 발랄함과 통통 튀는 면은 다소 부족하지만, 짧은 시구들 속에 무겁고 진중한 메시지를 읽어내기에 유익하다. 나도 점차 나의 세계를 확장해서 의미 있는 동시들을 써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시집의 제목, <벌에 쏘였다>처럼 정말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준 동시집이었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사유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https://youtu.be/pcitR28Bxcs?si=P03wKPy0xmwYLu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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