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사람들은 자기에 관한 이야기가 누군가의 글에 쓰이면 불편해한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부끄러워할 만한 이야기는 최대한 각색해서 쓰고 칭찬할 만한 일도 프라이버시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쓴다. 50만 부 이상 팔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를 치료해 준 정신과의사는 자신을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책이 많이 팔릴 것을 예상하기는 힘들었겠지만, 뭔가 홍보효과를 놓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동화 <모모>에서 모모가 사랑받는 이유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면 조용히 침묵 지키는 법을 깨달아간다. 사회화의 한 과정인 것이다. 나대면 안 되며 자랑하면 안 되고 허세를 부려도 안된다. 사람들이 눈치를 주고 공격하고 조롱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의 한 단면인 것 같다.
너무 어린 나이에 대학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그렇게 귀 닫고 입 닫고 살다가(실제로 여자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직장 생활은 시집살이랑 같은 거란 말도 들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고 한이 되어서 시작한 게 블로그에 무작정 글을 휘갈겨 쓴 것이었다. 원래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무의식 중에 본격적으로 글을 쓴다는 게 나를 치유해 주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브런치 작가가 꼭 되고 싶다는 생각에 한 출판사의 편집자의 브런치 작가 되기 강의를 들은 것을 시작으로 점차 한 단계씩 밟아와서 출간작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란 생각에까지 이르게 됐다. 내가 한 때 읽었던 소설에서는 자유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타고난 권리라고 하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나를 표현하는 것이 왜 누군가에게 근거 없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카톡 프로필을 자주 바꾸든,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리든, 공개된 플랫폼에 글을 쓰는 것 하나하나까지 사람들의 검열을 거쳐서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아야 하는 무서운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외과의사 토마스는 공개적으로 쓴 글 한편으로 외과의사직을 놓게 되었다. 공산당의 독재를 비판하는 글이 문제가 되었다. 그처럼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자부심과 신념이 담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체제의 압박에도 아랑곳하고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면 설사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비굴한 인생을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