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행복학교 심화편 7강. <지혜의 눈> 편에서 첫 번째 마음 나누기는 <내 인생 가장 빛났던 순간>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떠오른 순간이 서른 살에 유럽배낭여행을 떠났던 일이었다. 다른 분들은 출산이나 첫 모유를 먹였을 때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직 미혼인 나는 유럽여행이 가장 빛나던 순간으로 기억됐다.
이어지는 영상은 한반도의 미래를 과거를 통해 살펴보는 것의 중요성에 관한 강연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과거를 공부하면 지금이 객관적으로 보인다.’라는 문장이 와 닿았다. 현재에 매몰되면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캄캄하지만, 과거의 비슷한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헤아릴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과거를 살펴보면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어느 정도 유추하기가 쉽다.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어서 투사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투사니 질투니라는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용도로 활용한다. 그런데 참 황당하게도 정당한 비판이 질투가 되는 걸까? 속 시원하게 할 말 하고 사는 게 투사가 되는 걸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해도 소설을 쓴다느니 망상이라고 이야기하는 정신나간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사람들 중에는 메타인지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날 한 대 쳤는데, 저 사람이 날 한 대 쳤다고 말하는 게 어떻게 질투가 되고 투사가 되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혐오가 되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제 3자 입장에서는 진실을 파악한다는 게 쉽지 않겠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그렇게 진실이 안갯 속을 헤매고 있을 때 그들의 선택은 대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며 자기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그 유리한 선택이란 자신의 치부를 가릴, 자신의 죄책감을 덮을, 자기 혐오를 방어할 것들의 선택의 연속.
진정으로 자기객관화가 잘 되는 사람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거나 죄책감을 무조건 덮는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헤치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자신의 열등감, 죄의식, 질투심을 솔직하게 밝히고 건설적으로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이 귀한 시대에, 그런 사람들의 인연은 가닿기 쉽지 않지만, 결국 세상을 아름답게 빛나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