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기 어려울 때,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마치 은혜를 베풀었음에도 은촛대를 훔쳐 달아난 장발장을 따스하게 품어준 마리엘 신부와 같은 행동이 누구에게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뉴스에서는 잠깐 지갑을 만져보았을 뿐인데 도둑누명을 씌워 동창생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파렴치한 여자에 관한 기사도 보았다. 세상에는 이렇게 악랄하고 나쁜 사람이 많아서 더 불안해지는 것 같다. 지금처럼 세계각국에 전쟁과 폭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 사랑이나 평화, 행복을 논한다는 게 어불성설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불안하고 위기에 빠질수록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희생양을 찾는다고 한다. 그것이 마녀사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험적으로 글을 남겼을 때 세상에 나쁜 사람이 많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지금이 마치 몇 십년전 조지 오웰이 예견한 소설 <1984>속 디스토피아 세계가 아닌가 싶다.
이지성 작가의 <에이트>에서 인공지능 시대는 4계급으로 나뉘는데 제1계급이 인공지능 소유자, 제2계급이 연예인, 제3계급이 인공지능, 그리고 나머지 99%가 제4계급으로 전락한다고 했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99%의 대다수를 하층민으로 전락시키는 세상이 온다면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고 말이다. 영화 <설국열차>가 현실화되는 것일까? 출산율이 바닥인 지금 이미 가속화되고 있는 것일까?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설 이론처럼 결국 인간의 제일 가장 밑바닥 욕망은 생존의 욕구이다. 생존이 달린 문제에서는 사람들이 이기심과 본능에의 충동을 그대로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혼자만 잘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인지 모르겠다. 생존에 위협을 받고 고통받는 누군가가 생긴다면 프랑스 대혁명처럼 결국 사단이 일어나지 않을까?
천국은 긴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상대를 떠먹여주는 세계이고 지옥은 낑낑대며 자기가 먹겠다며 난투극을 벌이는 곳이라고 한다. 이기심을 버리고 조금씩 자신의 것을 내어준다면 세상이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그러한 사람을 순수한 사람이라면서 칭찬한 듯 하지만 사실은 조롱하는 세상이 참 각박한 것 같다.
착하고 순수한 네로를 따돌린 마을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잃어갔지만, 나쁜 마음으로 질긴 목숨을 이어가봐야 비참한 기분만 들 것이다. 세상은 결국 선한 사람이 승리하는 곳 같다. 이기적으로 살면서 인간다운 모습을 잃어가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결국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조상들의 옛이야기들이 거의 항상 가리키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