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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반창고

상처뿐인 대학 시절의 기록

by 루비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럭저럭 친구들과 잘 지낸 것 같았다. 나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며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여고를 졸업해서인지 큰 갈등은 있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서 나는 철저히 짓밟혔다. 우리 학교는 새내기에게 선배들이 밥을 사주는 밥팅이 있었다. 후배가 선배의 연락처를 받고 ‘밥 사주세요’라고 연락하면 선배가 밥을 사주는 만남이었다. 나는 1학년 1학기 때는 이 밥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때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이쁘다’, ‘귀엽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초반에 친해진 동기들은 굉장히 소극적이었다. 이런 나를 불편해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기숙사 오픈 데이라서 초대한 적이 있다. 그러자 방에 들어와서는 누구 방은 인형도 많고 예쁜데 참 초라하네라며 비아냥거렸다. 그것도 오기 싫은 걸 억지로 온 것이었다.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서 꽂혔다. 한 번은 남자동기와 셋이서 과제를 하려고 강의실에 모였었다. 나는 무심코 ‘졸려워’라고 말했는데 맞춤법이 틀렸다며 계속 면박을 주었다. 그 외에도 밥을 같이 먹자고 하면 ‘네가 사주면’ 먹겠다고 하거나 소외시키기 일쑤였다. ‘네가 경기도 사람이어서 싫다’란 말도 들었다. 그냥 나라는 사람을 싫어하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A반이었는데 그래서 친한 동기도 없이 B반의 동아리 친구와 친하게 지냈다. 나는 동아리에서 처음 좋아한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가 여름 엠티에 오라고 수차례 전화를 하면서 멀어서 오기 힘들면 자기 집에 재워준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썼다. 그런데 날 미워한 동기 언니는 내 사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그날도 내 싸이월드에 비공개되어 있는 다이어리를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선배가 자기 집에 재워준다고 한 일기를 보더니 내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땐 왜 신고를 안 했는지 모르겠다. 한 선배는 계속 집적댔는데 그 선배와 사귄 동기언니는 그 남자선배까지 끌어들여 나를 이상하게 일러바치고 남자친구의 힘을 빌어서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나는 4년 내내 왕따를 당하면서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왕따가 창피하다는 생각과 혼자가 외롭고 무섭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런 와중에 교생실습을 가면 꼭 나를 좋아하는 남자동기들이 생겼다. 나에게 돈을 빌려주고 굳이 안 받으려 하거나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 하거나 호감을 보여서 B반의 친구에게 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친구도 점차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너무 코치코치 캐묻고 이상하게 그 친구에게 말하고 나면 그렇게 호감을 보이던 남자들이 나를 보고 정색하고 뒤돌아서 가버리거나 태도가 변한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 변화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는 대학생활이 끔찍하게 느껴졌고 4학년 때 임용시험을 혼자서 공부했다. 그때 아무것도 정보가 없어서 너무 막막해서 동아리 동기 오빠한테 몇 번 도움을 받았는데 그 오빠는 내게 너 동기들하고 사이 안 좋지 않냐며 내가 자기한테 도움을 받은 걸 우리 과 동기들한테 다 말한다며 협박을 했다. 그때 과 동아리방에 잠깐 놔둔 선물 받은 간식은 누가 훔쳐 먹었다. 정말 학교 생활이 지옥 같았다.


이렇게 나는 졸업식 때 동아리 후배들과 한 명의 휴학한 남자동기와 한 명의 여자동기 외에는 같이 사진 한 장 안 찍었다. 그때 부모님도 오셨는데 난 부모님이 내가 왕따라는 사실을 눈치안채길 바라며 과 동기들과는 상관없는 사람들하고 사진을 많이 찍어댔다. 그리고 1년간 열심히 재수해서 보란 듯이 임용에 합격하고 대학 동기들은 너무 끔찍하단 생각이 들어서 싸이월드를 탈퇴했다. 그럼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던 건 내 착각이었다.


이십 대 후반에 다시 남자동기에 의해 단톡방에 초대받았고 그들은 똑같은 괴롭힘을 반복했고 스무 살 때부터 저질렀던 만행을 지속했다. 결국 나는 더는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은 만행을 지속 중이다. 그들은 아마 내가 자살을 한 후에도 내 장례식장을 향해서 끊임없이 루머를 퍼뜨리고 욕을 할 위인들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겪은 일들만큼이나 생생한 소설의 소재는 없는 것 같다. 소녀시대 제시카가 소녀시대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소설을 쓴 것도 자극이 되었다. 상처 입은 자들은 글쓰기가 생존 통로인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처절했던 이십 대의 고백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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