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Last question 이 책을 읽으며 자기 안의 그림자와 대면할 수 있었나요? 그 그림자와 화해하는 과정을 글로 남겨보세요.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정여울 저, 299쪽
밝고 명랑했던 내가 수도권 사람으로서 경상도에서 십수년을 배척과 차별, 괴롭힘을 당하고 살아오다보니 성격이 많이 어두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불행속에서도 희망을 떠올리는 성격이긴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어둠의 그림자가 쌓여간건 부인할 수가 없다.
단지 진심어린 사과만을 바랐을 뿐인데, 인터넷 상에서 익명성에 기대어 나한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사실 무근의 말들을 쏟아낸 대학 동기들, 한 명 한 명 도움을 요청한 날 외면하고 카톡 차단한 동기들, 과거의 일들에 대한 사과를 요청하자 어떤 반응, 말 한마디 보이지 않고 차단해버린 나를 괴롭힌 가해자들... 나에게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서슬프런 공포의 기억들이고 지울 수 없는 상처인데 그들 중 누구 하나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가 없다는 현실이 절망적이다. 자신을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 자신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깊은 허무함을 느낀다.
물론 나는 아이큐 138의 성인영재 진단을 받을 만큼 남들과 다른 면이 있기도 하다. 그들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골고루 좋은 성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만 열성적으로 파고들어 불균형적인 성적을 받고 운 좋게 대학에 합격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한 것이 왕따의 원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따돌림과 배척, 괴롭힘의 이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지 인간관계에 서툴고 어리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농어촌 전형 출신 아니냐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자신들이 이해 못하는 수도권 생활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리플리증후군이라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대며 스토킹으로 괴롭힌 동기들...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그들을 감싸고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인가.
여전히 나는 이 상처와 아픔을 그림자처럼 내 인생에 한 몸처럼 가지고 다니며 괴로워하고 있기는 하다. 어쩌면 정여울 작가의 이 책을 읽고 나서 잊을만 하던 상처를 다시 후벼판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작가도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 직면하는 것, 똑바로 서서 대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숨기고 꽁꽁 감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서서 마주볼 수 있을 때 비로서 상처가 치유된다는 말을 믿는다.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면 됐는데 그 사과 한마디가 하기 싫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그들의 행태에 분노한다. 한때 내가 분노했던 마음의 이면에는 언젠가는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손을 내밀겠지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음 마저 내려놓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지나왔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은 내가 겪은 십수년간의 고통을 소설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이미 몇 편의 글을 썼고 목차는 완성했다. 내가 평생 가져가야 할 내 그림자, 내 상처, 내 분노는 그렇게 세상 속에서 조금씩 희석되길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건져 올리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내 그림자와 화해를 시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