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행복한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고 사는 사람이 아닐까. 그건 일이 될 수도, 연애가 될 수도,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을 잘 발전시켜 나가면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거나 연애 코치가 되거나 여행 작가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비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그러나 살아보고 싶은 사람을 동경하고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누구보다 남부럽지 않은 탄탄한 직장을 지니고 있지만 수많은 구독자의 유튜버를 부러워할 수도 있고,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사직서를 품고 있을 수도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을 느끼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그런 면에서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의 인터뷰는 모든 이의 로망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일하는 내내 슬럼프를 겪은 적도, 하는 일이 싫은 적도 없고 온전히 너무나 만족한다고 하였다. 아마 그러한 몰입과 열정의 힘이 그를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하는 안데르센상 수상으로 이어지게 한 게 아닐까. 그리고 바로 그러한 삶은 누구나 꿈꾸는 삶이 아닐까.
안정과 모험, 연봉과 열정 중에서 저울질하며 대개는 또다시 고단한 삶의 샐러리맨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며 가슴속에 품은 사직서를 찢어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되뇐다. “난 내 일을 사랑하고 책임감이 있는 가장이야. 사람은 원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없어.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도 있는 거야.”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있다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갔거나 책임감이 부족한 불성실한 사람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런데 더한 문제는 우리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 것도 마냥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어제는 A가 좋았다가 오늘은 B가 좋은 식이다. 이렇게 헷갈릴 바에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 건물주가 되자며 주식과 부동산 공부에 매진하기도 한다.
나 또한 여전히 싫어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20:80으로 하며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데 일단 80퍼센트란 숫자가 꽤나 선방한 것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싫어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비율이 거꾸로였으니깐. 그때는 정말 하루하루가 죽을 것처럼 고역이었고 심각한 우울감에 시달렸으며 미래의 희망이 없는 것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엄윤진 작가는 <좋아서 하는 사람, 좋아 보여서 하는 사람>이란 책에서 그러한 상태를 시시포스의 형벌이라고 묘사하였다. 돌을 산꼭대기로 올리고 떨어지면 그것을 또다시 무한 반복적으로 들어 올리는 삶.
이 책을 통해 지난한 불행 속에서 행복의 길을 찾은 사람으로서 그 여정을 안내해볼까 한다. 그것은 직장을 박찰 필요도 없고, 로또나 부동산에 인생 역전을 걸 필요도 없다. 소소한 일상에서 나의 행복 바구니를 늘려가면 되는 일이다. 진심으로 자기 일과 취미, 삶을 사랑하면 된다.
직장인의 고비
내가 힘들었던 건, 더 이상 일에 몰입할 수 없을 때부터였다. 4년 차까지 늦은 퇴근을 마다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내가 그렇게 된 데에는 사내 정치도 한몫했다.
일을 열심히 하고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계략과 술수와 아부로 관리자에게 잘 보이는 사람이 더 인정받는 구조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경력 교사는 선배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군대식 군기를 잡았고 은연중에 제일 나이 어린 막내였던 나는 군대의 일병처럼 이래도 까이고 저래도 까이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 상황에 항의를 하려고 하면 어디 저 경력자가 목소리를 내냐는 식으로 더 까였다. 그때 교감 선생님은 내게 “직장생활은 시집살이와 같은 거야.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몰라?”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나는 공무원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며 일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고 말았고 5년 차에는 완전히 무기력증에 빠져 매일 칼퇴근하는 날이 늘어만 갔다.
그러자 이전 직장에서 괴롭힘과 동시에 냈던 헛소문은 빠르게 기정사실화되었고 나는 점점 더 악순환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다 더는 견딜 수 없고 참을 수 없게 됐을 때 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게 됐다.
치료 후에도 한동안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못된 선배들의 소문과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었건만 피해를 호소하면 호소할수록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갔으니깐. 이제는 그와 같은 괴롭힘으로 인해 받은 정신과 치료를 일하기 싫어 거짓 진단서를 뗀 거 아니냐며 인격에 문제 있는 사람으로까지 몰고 갔다.
이때 나는 삶의 많은 교훈을 얻었다. 정말 진실한 관계라고 믿었던 어제의 친구와 가족이 한순간에 등을 돌리는 가장 차가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 인생에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는지를.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줬던, 한없이 베풀었던,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고 믿었던 사람들이 결국엔 내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 등에 차가운 비수를 꽂는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결국 관계에 공들여봤자 돌아오는 건 배신일 뿐이고 내가 성공하고 잘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내가 그러한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조차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한 인격자란 걸, 비록 나는 그리 대해준 사람들부터 처절한 배신을 당했지만 깨달은 것이다. 세상엔 좋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어쩌면 그건 강인하다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하겠다. 자신들한테 불똥 떨어질까 서둘러 손절 치는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들만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 대한 불신을 잔뜩 껴안게 됐다.
나만의 비전 있는 삶
이렇게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역시 독서였다.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원래도 책을 좋아했지만 틈만 나면 책을 사고 읽고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가장 힘이 된 책은 <스물아홉, 1년 후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이 책은 정말 나에게 많은 희망을 주는 책이었다. 애인도 직장도 잃고 혼자서 크리스마스를 자축하다 자살을 결심했지만, TV에서 우연히 라스베이거스를 보고 1년의 유예기간을 주는 아마리. 인생이 꼭 이십 대에 결혼해서 아이를 기르는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소설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길이 아주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6개월의 휴직 기간을 거쳐 복직했지만, 여전히 자주 울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라스베이거스를 목표로 삼은 아마리처럼 나는 유럽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부터 엄마, 동료 선생님까지 어떻게 여자 혼자 유럽 여행을 가냐고 걱정했지만 나는 17일간의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보다 삶은 꽤나 멋지고 재밌는 일이 많다는 것, 여전히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 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새롭게 많은 것을 꿈꾸고 실천하게 됐다.
색연필화와 오일파스텔화를 배우게 된 것, 블로그에 끄적인 유럽 여행기를 독립출판으로 펴낸 일, 라디오 에세이를 녹음하고 브런치 작가가 된 일, 그림책을 펴낸 일. 출판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에세이를 출간할 일, 대학원 아동문학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여러 권의 오디오북 동화를 출간한 일 등이 그것이다.
사람북닷컴 대표 박제인 작가님은 한 강연에서 한때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보다 더 행복하고 열정적으로 사신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를 기점으로 나이를 새로 세어서 아직 열 살도 안 되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셨다. 나는 묘한 동질감과 함께 한때 삶의 절망에 빠진 사람도 얼마든지 다시 박차고 올라 더 멋지게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삶에 감사하며 나 또한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다짐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는 문예 창작 영재학급 강사로서도 추가로 일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확장된다는 게 삶을 살아가는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