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오해할 때는 가슴이 아프다. 진실을 말해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니깐...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자신의 진실을 알리려고 사람들은 죽음을 택하는가?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어야만, 그제서야, 죽을 정도로 진실을 밝히고 싶었구나 믿어주는 건가?
오해하고 상처 주는 사람들은 그뿐인 사람들이다. 오해의 근거에는 편견과 차별주의적 시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자신들만의 고정관념과 딱딱하게 굳은 논리로 저 사람은 저럴 거야라고 지레짐작하며 그 모든 망상과 상상의 인물을 구현해낸다. 대게 오해는 악의적인 감정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에 대한 애틋함과 소중함보다는 증오와 경멸이 섞여 있을 때 더욱 쉽게 오해하고는 한다.
그렇기에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 쉽게 단정 짓고 멋대로 판단해버리고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나도 같이 내 마음대로 대하면 된다. 굳이 나를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아껴주지도 않는 사람을 나 혼자만 극진히 대하면 나만 호구되는 것 아닌가? 그들이 그렇게 차별 섞인 시선, 경멸조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건, 대게 질투의 감정이 근원인 경우가 많다. 네까짓 게 감히, 어떻게? 라는 감정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유치하고 치사한 감정일 때가 많다. 또는 무지와 두려움일 수도 있다. 잘 모르고 아득하게 느껴질 때, 대게 손쉬운 결론을 내리곤 한다.
사람들은 대게 자신이 납득하기 힘든 감정이 끓어오를 땐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며 상대를 비난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람은 성인군자라고 칭해도 되지 않을까?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더욱 고통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남의 감정에는 공감도 못하고 아랑곳하지 않는 안하무인인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도 속 시원하게 내뱉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다움을 누가 더 잘 지키느냐하느냐면 반대가 아닐까?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에 대한 열망과 지조를 지킨 사람들은 고문을 받고 고통 받다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절개와 순수함은 영원히 칭송받는다. 친일파나 변절자들은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받는다.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게 이 세상의 최상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결국 오래도록 빛나는 가치는 정신적으로 순수하고 고결함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들의 선함은 오래도록 진한 향기와 여운을 남긴다.
타인을 속일지라도 자신은 속이지 못한다. 과연 죽는 순간에도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후회 없이 아름답게 사는 삶이 진정 자유로워지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