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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by 루비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불행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행에 익숙한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그렇다면 행복이란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는 걸까? 파랑새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먼 곳을 돌고 돌아 가까이에 행복이 있었다는 걸 깨달아야만 하는 걸까? 우리 주변에 늘 있다는 행복인데 인터넷 뉴스에서는 살인, 방화, 폭력, 시위와 같은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어서 우울해지곤 한다.

흔히 쉽게 이야기하는 게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한다. 행복은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행복은 자기만족이라고 한다. 행복은 무소유라고 한다. 한때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도 유행했었다.


그런데 정말 이런 것들이 행복과 연관이 있을까?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지 않았다. 월급이 들어오거나 모처럼 보너스가 들어와 백화점에 쇼핑하러 갈 때는 순간적 일지 몰라도 기분이 고양됐다. 돈이 없었다면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이다. 현대 사회에 살면서 타인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는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누구는 직장에서 어느 직급에 오르고 누구는 자식이 어느 대학에 들어가고. 행복은 자기 만족도 그렇다. 내가 지금 갑자기 살이 쪄서 몸무게가 20kg이나 더 나가고 건강이 악화됐는데 예전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만족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옆 사람과 비교하지는 않을까? 정말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가진 고급차, 고급 가구, 명품 가방 이런 것들……. 당장 병원비가 없고 잠잘 곳이 없는데,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소확행을 만끽할 수 있을까?


가끔 뉴스에서 발표되는 부탄이나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는 그 나라 안에서 비교 대상이 별로 없어서 자기 만족도도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부탄이라는 나라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행복지수가 낮아졌다고 한다. 전 세계의 선진문물과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과 비교를 하곤 한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란 책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원주민 사회에 신문물을 소개하자 새로운 물건들에 대한 소유욕이 생긴 사람들이 갈등하고 다퉜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에 노출되어 있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의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말이다.


불가피하게 비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건 어떨까? 시선을 주위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달라지는 나의 모습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했다. SNS에 편집된 화려한 삶, 누군가의 성공과 소유물 등이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단지 부러움에서 기인한, 착각의 산물인지 스스로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분위기에 휩쓸려 내가 뭘 정말 좋아하는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조차도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남들과의 비교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더 나아진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행복이란 무엇일까? 내게 행복은 성장, 성취, 불필요한 고통에서 자유로운 상태이다. 내가 노력해서 글쓰기를 좀 더 잘하게 되는 것, 피아노를 잘 연주하게 되는 것, 스스로를 가꾸는 것 역시 만족감을 준다. 또한 차곡차곡 쌓이는 적금통장, 대회에 나가 상을 타는 것, 직장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 것, 소원하던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어마어마한 기쁨을 준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스트레스와 고통에서 자유로운 상태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행복을 극대화하는 좋은 방법은 많이 베푸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이 풍요로워질 수가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주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나누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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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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