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어린 시절 나와 남동생을 위해 집 마당에 원두막을 지어주셨다. 우리는 선선한 날씨면 원두막에 올라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낮잠을 자거나 놀았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동네 친구들과 우리들만의 아지트였다. 하지만 그 아지트는 우리 집에 화재가 나면서 다 타고 사라졌다.
우리 아빠는 이제 너무 많이 늙으셨다. 여전히 차를 운전하시고 집에서 장작을 패고 밭을 가꾸시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이 역력하다. 내 기억 속의 아빠도 젊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흐른 걸까? 그런 것을 보면 나도 더 이상 젊지 않구나 싶긴 하다.
이상국 시인의 <아들과 함께 보낸 여름 한 철>이란 시를 읽으면 그리운 마음이 든다. 나는 딸이지만, 너무나 바쁘게 살아온 탓에 아빠와 같이 보낸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슬퍼진다. 아빠의 아빠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빠의 새엄마인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할머니의 인생이 서글퍼서 마음이 아팠다. 우리 아빠가 돌아가실 걸 상상만 해도 슬퍼진다. 아빠가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희생양으로 바치라는 하느님에게 순종하여 기적적으로 아들을 구할 수 있었다. 어느 누가 감히 사랑하는 아들을 희생양으로 바치려고 마음먹을 수 있을까? 만약 내가 그 상황이 온다면 순종할 수 있을까? 나의 믿음이 흔들릴까 봐 너무 두렵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이 있다. 세상엔 이해가 안 가고 슬프고 불행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아껴주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에 대한 사랑도 잊지 않고 싶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그 모든 여정이 하느님이 다 계획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나의 거칠고 모난 마음을 다 내려놓고 둥글둥글하게 다듬어서 정결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나에게도 기적 같은 순간이 다가올지 모르겠다.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충만하게 살아가고 싶다.
지금은 아빠가 지어준 원두막은 사라지고 없지만, 옛날에 살던 시골집에 가면 그리운 옛 추억이 떠오른다. 유년 시절의 아빠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언제나 내 곁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나도 더 큰 믿음과 사랑으로 세상에 보답해야겠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