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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연이의 사색
연이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 이유는 연이만이 알고 있다. 마음속에 품은 뒤 입밖에 내지 않았으니깐. 연이는 욕심이 많은 여자다. 그래서 소설뿐만 아니라 시, 동화, 에세이, 논픽션 다양하게 쓰고 싶었다. 하지만 번번이 한계에 부딪혔다. 작가마다 고유한 문체가 있기 마련인데 자신에게는 아직 어떤 개성이랄까, 특징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건 연이의 인생과도 닮아있다. 연이는 스펙트럼이 너무 넓었다. 하지만 그 자신도 늘 고민했듯이 이제 좀 뾰족해질 필요가 있었다. 날카롭게 벼무릴 뭔가가 필요했다.
사실 몇 편의 동화와 에세이를 출간하면서 좌절과 회의가 몰려왔다. 나에게 재능이란 게 있을까? 동화와 에세이로 성공하지도 못했으면서 소설 출간까지 바라는 건 너무 무모한 욕심은 아닐까 하고. 좋아하는 게 많으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많이 아는 것이라는데 자신은 하나만 선택을 못해서 모두 다 놓쳐버리는 허술한 인간 같았다. 하지만 하나를 선택하면 버려야 하는 다른 하나가 사실은 진짜 자신의 길이면 어쩌지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렇다면 연이에겐 시와 에세이, 동화, 소설 중에 어느 길이 적합한 걸까? 고민하고 수차례 되물었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머리기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은 오랜 시간 공들여 호흡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일에 걸맞지 않다고. 후지산에 올라 휘리릭 둘러보고 후지산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과 직접 정상에 올라 발로 밟고 몸으로 경험한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연이는 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꽤 많은 일들을 직관으로 알아채는 사람.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감각하기보다 느낌 하나로 전체를 순식간에 파악하는 사람.
그래서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보다는 파울로 코엘료 같은 소설가를 더 선호하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느리게 호흡하기보다 꿈에 그리던 세상을 묘사하듯 우주적인 기운을 모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을.
그렇다면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주장이 틀린 게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스로가 소설가는 고집이 세고 자기 세계가 강하고 옳다고 하는 것을 밀어붙인다고 했다. 소설의 세계에 누구든지 뛰어드는 것에 포용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속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꼭 머리회전이 빠르다고 해서, 감각적으로 세계를 경험하기보다 직관력이 발달했다고 해서 소설가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신만의 철학에 빠진 건 아닐까.
자기 비하에 빠졌던 연이는 생각했다.
“그래, 난 한 가지 음식만 고집하기보다 세상의 진미를 모두 맛보고 싶어. 그러다 보면 나만의 진수성찬이 차려지겠지. 미슐랭 3 스타에 준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