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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동화> 하늘문에서

by 루비

하늘에서도 빛나는 너, 준영이에게.






한 청년이 하늘문으로 향하는 사다리 앞에서 서성였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생전에 가난과 고독과 싸워야만 했다. 그는 매일같이 콜라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끊지를 못했다. 그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는 유일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건강도 악화되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그 청년은 더 이상 자신이 하는 일로는 돈을 벌 수도 없고 어떤 의미도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세상을 저버렸다. 그는 생전 종교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과 게임에 모든 인생을 바쳤다.


같은 날 건강이 악화되어 하늘문으로 올라온 한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년의 이름은 루시였고 중년 남자의 이름은 테오였다. 테오는 루시를 비루하고 천하다고 혀를 끌끌 차며 바라봤다.


진주로 장식된 하늘문을 보며 테오는 얼마나 할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루시는 자신의 누나가 하던 진주귀걸이를 떠올리며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둘이 막 하늘문을 넘어가려던 찰나, 천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천사는 루시에게 물었다.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나요?”


루시가 대답했다.


“저는 가족을 너무 사랑했어요. 가족들이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가족들은 새벽같이 일하고 늘 저를 챙겨주었죠. 제가 고민이 있거나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고 싶을 때마다 도와주었어요. 하지만 제가 일을 하지 않는 건 걱정스럽게 바라봤어요. 저는 그림을 좋아했지만 돈을 벌 수가 없었어요. 학교폭력으로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몸도 아파서 밖으로 나가는 게 힘들었어요. 판타지는 제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그마저도... 다른 유튜버들이 하나씩 접는 게 보였어요. 대형 방송국을 이길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인공지능의 발달도 저를 맥 빠지게 했어요. 그러면서 저도 꿈을 포기했어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솔직히 부담이 많이 됐어요. 부모님께도, 누나에게도 너무 미안했어요. 내가 짐덩어리가 된 것만 같았죠. 그래서 결심했어요. 나는 이 세상을 떠나기로. 내가 세상을 떠나면 부모님과 누나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나 때문에 싸우지 않아도 되고, 제 병원비가 나가지 않아도 되고, 저 때문에 속상할 일도 없을 테니깐요. 저는 부모님과 누나를 사랑해서 그들을 구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예요.”

“저런. 그럼 가족들이 많이 슬퍼할 거란 생각은 안 했나요?”

“슬픔은 잠깐이지만... 산 사람은 남은 생을 살아갈 테니깐요.”

듣고 있던 테오가 불쑥 끼어들었다.


“루시, 자네는 죽어서까지 가식이군.”

“네?”

“다른 사람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어.”


천사가 테오에게 물었다.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됐죠?”

“나로 말할 거면 암에 걸렸지. 나는 아주 부유했어. 하나님을 믿었고 신실한 마음으로 가득했지.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병을 주셨어. 하지만 난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고 제일 좋은 병실에서 치료를 받았지. 가족들은 나를 극진히 간호했어. 하지만 난 듣고 말았어. 내가 잠깐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며느리의 속마음을... 병간호만 하다가 유산도 받지 못하고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자기가 먼저 죽는 건 아니냐고 하더라고...”

루시는 슬픈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난 이럴 바에 그냥 죽고 싶었지. 자식들을 위해서도 며느리, 사위를 위해서도... 아니야. 그냥 내가 살아있을 가치를 느끼지 못했어. 어서 빨리 먼저 간 아내를 만나고 싶었지. 원래 죽음이란 그런 거야. 산다는 건 비참함을 향해 달려가는 거야. 루시, 너를 너무 포장하려 들지 마.”


루시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전 정말로 가족을 사랑했어요. 그게 가족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가족이 절 너무 사랑해 줘서...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어서... 전 정말, 진심으로 가족을 위한 길을 택하고 싶었어요.”


테오는 어이없다는 듯 크게 웃었다.


“하하하. 가족을 위한 길이라고? 사랑해 주는데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내버려 두나. 말이 안 돼. 말이 안 되지.”

천사가 끼어들어 말했다.


“하느님은 모든 걸 알고 계세요. 정말 좋은 사람은 자기 안에 남을 살게 하는 사람이에요. 그분께서는 루시에게 아름다운 황금열매와 빛나는 왕관을 선물로 주고 하늘문을 입장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어요. 천국에서 루시의 소중한 영혼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께는 짧은 재교육을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루시는 황금열매와 왕관을 선물 받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띤 채 하늘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할머니, 할아버지, 먼저 간 친구를 다시 만났다. 살아생전에는 근심이 가득했던 얼굴이지만 하늘문을 넘은 루시는 누구보다 기품 있고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테오는 잠시 교육을 받고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 수련을 더 받아야 했다.


“테오. 당신은 정말 아직도 루시가 믿기지 않나요?”

안내자가 물었다.

”네. 저는 그런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제일 소중히 여기니깐요.

“테오. 당신은 하느님을 믿지 않았나요? 그런데 어째서 자기 자신이 제일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죠?”

“그건... 하느님을 믿었지만... 사실 하느님이 의심이 가기도 했어요. 제가 암에 걸리게 했으니깐요.”

“루시. 하느님이 암을 준 건, 고통을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의미였어요. 하지만 테오 당신은 그걸 원망으로 바꿨지요. 그래서 다시 지상에서 배움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테오는 하늘문이 아닌 환생의 문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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