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인정받아야 하나?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들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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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정욕구가 있다.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좌절하고 우울감에 빠지고 심해지면 우울증에 걸린다. 러시아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제1번의 초연 실패로 큰 충격을 받고 약 3년간 작곡을 중단하며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때 그를 일으켜 준 것이 니콜라이 달 박사였다. 그 후 그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해 발표하며 작곡가로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다시금 음악계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서 정신과의사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새 곡을 쓰면 인정받게 될 거야.’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라흐마니노프가 실패를 딛고 재기에 성공했기에 우리에게 천재 피아니스트로 기억되며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하지만 문득 꼭 인정받아야 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으면 많은 명예와 부와 사람들로부터 많은 호의를 받을 수 있지만, 설사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나를 학대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무가치함을 느끼고 스스로를 미워하고 심하면 스스로 목숨까지 끊지만,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조건이나 능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아 마땅할 충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숫자로 평가하는 것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심오한 지성, 풍부한 감성,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같은 것들이 더 그 사람의 내면을 풍요롭게 해 주고 건강한 인격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나 외부로부터 멀어진 고립감에 의해 자신을 심하게 미워하고 절망의 수렁텅이에 빠진다. 물론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사람과 단절되고 고립에 처하면 극도로 불안해지고 마음이 피폐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만약 마지막 보루인 가족에서까지 설 자리가 없으면 더 견디기 힘든 것 같다. 그럴 때 우리는 정신과의사나 상담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책과 영상에서 위로를 구하며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지칠 때가 있다. 그때 그는 생명의 빛을 스스로 꺼버린다.

물론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변호사들의 대화처럼 약자들이라고 다 착하진 않다. 하지만 차가운 세상에선 오래 알고 지낸 가족마저도 한 순간에 등을 돌리고 타인들의 말에 흔들리며 비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정과 추억, 신뢰는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정말로 사려 깊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결과 내면의 모습을 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무한경쟁주의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에 대한 평가를 경제력으로 치환하며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벼랑 끝으로 내몬다. 흡사 영화 <오징어 게임>과 같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집단공동체가 와해되고 가족 내에서도 경쟁이 극심해져서 소위 스펙이나 외적인 가치가 낮으면 극심한 우울에 빠지곤 한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그 사람을 더 사랑해 주고 더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는 내색은 하지 않더라도 사실 스스로가 가장 고통스럽고 외로운 상태일지도 모른다. 테레사 수녀님도,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가난하고 헐벗은 가장 낮은 자들을 극진히 아끼셨다. 세상 사람들은 자주 무시하고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곤 하지만, 누구보다 소중하고 약하고 소외된 자들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도록 따스한 시선을 보내주는 게 어떨까. 냉혹한 세상을 만들지, 따스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지는 각자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시선에 달려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면 결국 돌고 돌아 그 상처는 자신을 겨눌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소중하다. 사랑과 따듯한 연대만이 무한경쟁의 사회 속에서 서로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다.



https://youtu.be/YviN1tuXbzc?si=RBldhABYf5ENr_nr

라흐마니노프가 작곡가로서 재기에 성공한 피아노 협주곡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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