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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May 15. 2021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자, 뮬란

디즈니의 히로인

 스물여덟 살 겨울방학 튼튼 캠프(보충학습 수업)를 마치고 남자 선생님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물론 할 말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고 이해는 한다. 그런데 한 남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불쾌해졌다. 그 말인즉슨, "여자 나이랑 남자 나이랑 다른 거 알죠? 드라마만 보고 동화 속 공주를 꿈꾸지 마세요."라는 식의 말이었다. 그 남자 선생님은 나랑 동갑이었고 갓 발령 난 신규교사였다. 난 그때 이미 5년 차였고, 그 남자 선생님에게 어떤 이성적인 어떤 호감도 없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걸까?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후에 사과를 받아내긴 했지만, 이게 우리나라 남선생님의 성평등 인식인가 싶어서 씁쓸했다.(워낙 할 말이 많지만 길어지니 이쯤에서 그만...)

 

 어제저녁 뮬란을 다시 봤다. -스포 있습니다-  <디즈니 철학수업>이란 책을 읽고  후였다. 뮬란을 굉장히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자로 묘사했다. 이전에는 그저 재밌게만 봤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새롭게 보이는 장면이 많았다. 이를테면, 뮬란이 중매쟁이를 만나는 장면은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지난  삶과 오버랩되면서 씁쓸함을 갑출 수가 없었다. 여자는 반듯하고 조신해야 하며 차를 가지런히 따라야 하며 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을 강조한 화장법 . 영화  중국 고대사의 이야기가 작금의 한국과도 조금의 이질감이 없다는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오랜 시간 지방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주변 대부분의 여자들은 서른이 되기 전에 서둘러 좋은 혼처를 찾아 결혼을 했다.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은 무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아마 그런 연유에서였을 것이다. 행여나 부잣집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있으면 "시집  갔네."라는 말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무슨 오긴지 배짱인지 소개팅, 선자리, 결혼정보회사의 중매로 수많은 소위 조건 좋은 남자들의 소개를 받았지만 인위적이고 뭔가 여성의 가치를 상대 남자에게 판매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쉽사리 만족할 수가 없었다.


 뮬란은 남자에게만 허락된 군대에 여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아버지 대신 들어가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죽을 위험에도 처하지만 다행히 자신의 기지로 목숨을 구한 중대장이 살려준다. 중대장의 선처로 목숨은 구했지만 풍전등화의 위치에 놓인 나라를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뮬란은 또 한 번 구국의 영웅이 된다. 뮬란이 왕과 백성들의 극진한 찬사를 받고 돌아가고, 왕은 중대장에게 말한다. "역경 속에 핀 꽃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란다." 조신하지 못하다고, 여자답지 못하다고 중매 자리에서 매번 물을 먹은 뮬란이었지만, 여자의 몸으로 온 나라의 영웅이 되었으니 당연한 찬사가 아닌가 싶다.


 결국 중대장은 뮬란의 집으로 찾아오고 둘의 사랑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비혼 주의, 만혼도 많이 늘어가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여성을 옥죄는 구시대적 관념이 팽배하다. 하지만 비록 시대의 주류에 맞지 않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 아름다운 것, 정의를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당장의 냉대와 조소에 좌절하지 말고, 참된 진리를 따르자. 그럴 때 우리는 뮬란처럼 아름다운 여전사로 기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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