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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읽었던 책이다. 오늘따라 생각나서 블로그를 뒤적거려 봤다. 이젠 지쳤다는 말이 사무친다. 슬픔은 모두 오키나와에서 온다는 말도 가슴 아프다. 너무 힘들고 지친다. 영문을 몰라서 괴로웠던 일들... 이런 책은 화려하고 힘 있는 사람들에겐 지루하고 심심한 책이겠지? 나는 왜 그 시절,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들을 즐겨 읽었을까 그런 생각이 스친다. 여기까지 버텨온 내가, 신기하다.
좋은 사람일수록 이기적인 인간이 될 수 없으니까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거지‥‥‥.
좋은 사람이란 자기 안에 남을 살고 있게 하는 사람이야.
P.180
세상에 나서 제일 슬펐던 일은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다는 거였어.
학교에서 말이야. 컴퍼스로 동그라미를 그리는데 내가 그리는 동그라미만은 몇 번을 그려도 동그라미가 안 되는 거야. 모두들 척척 그리는데 내 것만은 아무래도 동그라미의 선이 이어 지지를 않았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동그라미가 안 돼. 내 컴퍼스는 녹슬고 낡아빠진 거였거든. 그러니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당연했지. 어쩌다가 컴퍼스가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동그라미가 되는 때도 있었어.
그치만 다음에 또 그리면 역시 선이 이어지지 않은 동그라미야. 그럴 때는 더욱 슬펐지. 나는 말이다, 울면서 동그라미를 그렸어.
난 노부에 숙모네에 얹혀살았는데, 사촌들이 많았어. 컴퍼스를 사달라는 말은 어림도 없었어. 그래서 누나에게 편지를 썼지.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는 컴퍼스는 슬프다. 다시는 아무것도 사달라고 안 할 테니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는 컴퍼스 하나만 사달라고. 일생의 소원이다‥‥‥. 이렇게 써 보냈더니 누나가 컴퍼스를 사서 보내주었지.
내가 그렇게 신이 나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누나는 죽었어.
기요시, 이젠 너무 지쳤다. 기요시, 용서해다오‥‥‥.
편지에 이렇게 써놓고 누나는 열아홉 살에 죽어버렸어.
기요시는 그렇게 말하고 또 울었다. 컴퍼스를 움켜쥔 채 언제까지나 울고 있었다.
그날 밤 후짱은 기요시가 울면서 들려준 이야기를 수없이 되새겼다. 불행이나 슬픔은 제각기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줄줄이 이어져 있는 것임을 후짱은 아프도록 깨달았다.
P.184
슬픈 일은 모두 오키나와에서 온다. 왜 그럴까? - 후짱
P.203
깅 아저씨가 선생님들을 믿지 않는다고 했는데, 누구를 편애하는 일이 없더라도 인간으로서 믿지 않는 선생님도 없진 않을 거야. 공부를 못하는 애는 공부를 잘하게 해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 라고 할 테고, 슬픈 일이 너무 많아서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애는 공부 잘하라고 말하는 선생님보다 그 슬픈 일을 함께 생각해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 거야. - 기요시
P.213
오미네, 와카스기를 용서해라. 이런 말을 쉽게 하면 정말로 와카스기의 미움을 살지 모르지만, 그래도 용서해라. 나야말로 후짱, 너에게도 도키코에게도 사죄해야 한다. 그러나 입으로 사죄하는 일은 간단하지만 그건 그만두겠다. 그리고 교사 노릇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거다. 도키코의 이 편지를읽고 나는 그간 교사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단다. - 가지야마 선생님
P.215
쓰라린 일을 당해본 사람이 쓰라린 일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 아무리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도 쓰라린 일을 당한 적이 없는 사람은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는없는 거다. - 후짱
P.223
끌리는 별
칠월 칠석날 밤 은하수의 동쪽에 있는 견우성과 서쪽에 있는 직녀성이 1년에 한 번 만난다는 이야기를 엄마가 해주었을 때 후짱은 '끌리는 별'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도 마음이 맞는 사이를 끌리는 별이라고 후짱의 주변 사람들은 부르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도 끌리는 별이고, 후짱과 엄마도 끌리는 별이다. 후짱의 눈에는 데다노후아 오키나와정에 오는 사람은 모두 '끌리는 별'이었다.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눈물이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그 가녀린 몸을 지탱하고 살아가는 건,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밤하늘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것만 같다. (2006.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