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 - 축제의 한 켠에서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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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개하는 글은 2006년 10월 1일, 스무 살 무렵 블로그에 썼던 기록을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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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 - 축제의 한 켠에서

매점에 가다가 본 ‘천막을 빌려드립니다’라는 문구. 이틀간의 축제 때 우리끼리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일단 한번 해보기로 하고 무엇을 할까 서로 고민 고민하였다. 그러던 찰나에 우리가 몇 주 전부터 다니던 효목공부방이 떠올랐다. 우연히 알게 된 곳으로 한번 두 번 나가다가 아이들이 예뻐서 계속 나가게 된 소중한 장소이다. 효목공부방은 부모님이 일하느라 바빠서 돌봐줄 수 없는 아이들, 또는 편부모 가정 아이들을 비롯한 저소득층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함께 모여서 공부하는 곳이다. 우리는 축제기간에 함께 뜻을 모아 번 수익기금으로 효목공부방에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해서 소*이, 새*언니, 수*언니, 나 이렇게 넷이서 축제기간 마지막 날인 9월 28일, 동땡 앞에서 생과일주스와 샌드위치를 팔게 되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랴부랴 학교로 향했다. 전날 붙여놨던 노란색과 하늘색의 전단지가 학교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길 바라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천막과 테이블을 옮기고 준비해 온 것들을 풀어놓았다. 그 과정에서 잠시 경비아저씨와 실랑이가 있긴 했지만 무사히 잘 넘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생과일주스를 만들려면 믹서기를 써야 하는데 전기를 끌어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가판대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고, 생과일주스는 학생회관 안에 있는 동방에서 만들어 가판대에서 파는 이원시스템으로 나가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열심히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며 발품을 팔아야만 했다.


전기문제로 원래 오픈 예정이었던 11시보다 조금 늦은 12시가 지나서 슬슬 하나둘씩 팔기 시작했다. 우리의 메뉴는 토마토주스와 바나나주스 그리고 롤샌드위치였다. 처음에는 속도도 느리고 서툴기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손에 익기 시작하였다. 조금씩 줄어드는 재료들을 보면서, 또 대나무로 엮은 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이는 돈을 보면서 뿌듯하기만 했다. 중간에 함께 공부방에 나가는 홍*가 도와주어서 일이 더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다시 한번 이 글을 빌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여담이지만 중간에 어떤 여학생 두 명이 먹을 것을 사려고 온 줄 알았더니 학교 과제 때문에 그러는데 바나나껍질을 줄 수 없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주스를 팔아주는 조건으로 기꺼이 껍질을 주었다.


처음에는 과연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괜히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하지 말까라는 생각도 해봤었다. 그러나 중간중간 도와주러 온 동기들, 맛있다며 또 사러 온 손님들, 그리고 우리를 지지해 준 교수님들까지. 모두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역시나 해맑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을 공부방 아이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오늘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던 축제의 한토막이 끝나가고 있었다. 재료준비부터 음식 만들기, 배달까지 하나하나 스스로 준비하여 이렇게 대학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쁘다. 이것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지만, 누군가를 돕기 위해 땀 흘리는 것만큼 값진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본다.


지난 30일에 공부방에 다시 갔을 때 아이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물감이 그려져 있었다. 고양이, 판다, 사자 얼굴 등 알록달록 예쁘게 꾸민 아이들의 얼굴. 우리가 온다고 즐겁게 해 주려고 미리 얼굴에 페인팅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전에는 연극을 보여주었었는데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그리고는 수업도중에 빨리 씻지 않으면 안 지워진다며 우르르 한꺼번에 밖으로 나가서 수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모습이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큰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매주 금요일 저녁, 지하철을 타고 효목공부방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에 책임감 있게 닿는 일이라는 걸 이때의 경험을 통해 더 깊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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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무 살이던 대학교 2학년 때 쓴 글이다. 새내기 시절, 우00(내 예전 이름) 패밀리 중 한 명으로 불리던 나는 얼마 안 가 그 무리로부터 은따를 당했다.(이건 4학년 마지막 실무실습 때 B반 동기오빠가 나한테 내가 동기들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자 “너 은따냐?”라고 물어본 기억도 있어서 근거가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오빠는 내가 스물일곱 때 내게 “넌 시집 안 가냐?”라며 문자로 내 소속근무학교 교장선생님 전화번호를 물어봐왔고, 내가 답장으로 가르쳐주면서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더 이상 묵묵부답이었고, 그 후 얼마 안 가 나는 직장에서 또다시 집단 따돌림과 헛소문과 괴롭힘에 시달렸다.) 아무튼, 이 글은 1학년 때 처음 사귄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새로 사귄 무리와 친해지기 위해 애쓴 흔적인데 공부방에서도 아이들이 나를 제일 좋아하자 조금씩 시샘을 내는 게 보였고, 겨울방학 때 내가 공모전에 당선(대한적십자사 대상과 매일신문 여행공모전 당선)되자 강도가 심해지더니 다시 소외의 길로 가서 4학년 때는 졸업연주회도 박수갈채를 받으며 근사하게 끝냈지만, 후에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그리하여 꽁꽁 숨겨둔 비공개글이지만, 그래도 내 대학시절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글이라 공개한다. 이때 당시 같이 봉사활동을 한 동기의 부탁으로 교내 신문사에 실릴 기사를 쓴 것인데, 그 동기는 내 글을 보더니 “잘 썼다. 근데 이거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말자.”며 나를 감추는 데 적극적이어서 다시 한번 상처와 소외감을 느꼈었다. 나는 치유활동을 시작하며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글쓰기 강사에게 이 일화를 이야기했다가 “그건 글을 너무 못썼기 때문에 감싸주려고 그런 거예요.”라며 부당한 공격과 2차 가해를 당해서 크나큰 상처를 입었고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됐다. ‘네가 일을 못해서.’ ‘네가 성격이 나빠서.’, ‘네가 무슨 잘못을 했으니깐.’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를 여러 번 죽이는 인격살인자라는 걸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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