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성적 끌림이라는 단어를 은밀하게 표현하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누구와도 그런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또는 누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당연히 그런 성적 끌림을 전제로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너무 늦은 나이에 들었다. 나에게 ‘좋아한다’는 순수하게 그냥 그 사람 자체가 좋은 것이다. 그 사람의 생각, 가치관, 철학, 살아온 인생의 결이 좋은 것이다. 나는 성적 끌림이란 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기에 그런 것이 있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 것들이 나를 오해의 늪에 빠지게 한 걸까? 대학 시절, 나를 유독 미워한 동기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의 남자친구는 처음에 나에게 호감을 보였지만, 나는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도, 평소 말하는 어투와 습관도, 여러 가치관이나 태도 어떤 면에서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귀엽다’며 꽤 많은 호감을 드러냈고 난 그럴수록 불편했다. 운동에 젬병인 나는 체격이 좋거나 운동을 잘하는 남자들에게도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여자들에게는 매력적일 수도 있고, 어떤 남자들도 그렇게 느끼나 보다.
나는 단지, 그 언니가 나를 너무 괴롭혀서 힘들어서 주변에 하소연했을 뿐이고, 애초에 그 언니의 남자친구가 처음 호감을 보였던 사람은 나였는데, 어느새 내가 그 언니를 질투해서 헐뜯는 사람으로 둔갑해 있었다. 너무 황당했다. 이건 마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단순한 폭력 이상의 극악무도한 음해와 괴롭힘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더 억울함을 호소하고 도움을 청했지만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고 나는 엄청난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렸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질투와 열등감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관용적인 마음으로 어릴 적엔(그럼에도 내가 제일 막내고 나와 띠동갑까지 차이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나의 따듯한 마음을 짓밟고 재차 루머를 퍼뜨리며 지속적으로 괴롭혀왔다. 나는 어떻게든 오해를 풀려고 대화까지 시도했지만 카페에서 ‘반박글’이라는 미명아래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거짓으로 휘갈긴 글을 쓴 채 나를 강퇴시키고 모든 발언을 차단하며 짓밟았다.
무튼, 나는 나라는 사람의 성적 정체성도 모르고 타인의 반응도 이해할 수 없기에 세상엔 왜 이렇게 나쁜 사람이 많을까 고통스러워했다. 그땐 몰랐지만 이제야 느낀 건, 나는 내가 데미섹슈얼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보면 데미섹슈얼은 반성애자, 깊은 관계와 감정 교류를 통해서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은 무수했고, 그들의 사회적 조건도 괜찮았지만, 나는 단순히 몇 번의 만남으로 호감이 생기지 않았고, 그것들이 나를 연애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오랜 대화와 따듯한 교류 안에서만 상대방에 대한 설레는 감정이 싹튼다. 그 대화와 교류는 가치관의 일치, 따듯한 마음씨에 대한 공명, 비슷한 취향들에서 생겨난다.
스타강사 이지영은 한 강연에서 자신은 ‘연애고자’라고 표현을 했는데 나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경험이 없어서 숙련되지 않을 뿐이지, 나는 소설 <오만과 편견>의 리지처럼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누군가는 현실에는 다아시 같은 남자는 없다고 했지만, 영국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 역할을 맡은 ‘콜린 퍼스’ 같은 남자는 충분히 존재하지 않을까? 데미섹슈얼에 로맨틱 성향인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https://youtu.be/eAgQlpSRub0?si=PWwKWB_25rUrNs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