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마카오에서

공기처럼 곁에 있던 내 동생, 청춘의 반짝임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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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막 내 동생 스무 살, 나 스물한 살 됐을 때, 함께 한 마카오&홍콩 여행.


내가 매일신문 여행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에어텔을 지원받게 되어 동생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 동생, 수능 끝난 직후네.

원래는 내 단짝친구한테 가자고 했었는데, 그 친구는 '마카오'가 어디 붙은 나라냐며 가고 싶지 않다고 했고, 그다음으로 남동생에게 제의를 한 것이었다. 지금 그 친구는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서운한 감정이 너무 많이 쌓여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가장 상처가 됐던 건, 내가 교사 1년 차 때, 교직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전화했을 때, "네가 뭐가 힘들어? 내가 더 힘들어..." 이 말을 들었을 때, 그 친구뿐만 아니라 같은 학창 시절을 공유한 고등학교 친구들이 넌 교사면서 뭐가 그렇게 힘들다는 거야, 너처럼 편한 애가 어딨어라는 식으로 말한 것들, 만날 때마다 나에게 금전적으로 기대려고 하는 것들이 너무 부담이 됐다. 요즘처럼 곪고 곪았던 교권추락 세태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반짝이던 이십 대 때는 친구가 내 인생의 전부였고, 난 그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소외되어도 필사적으로 함께 하길 바라며 비굴하게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스물아홉에 가장 힘든 시기, 고소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완전히 연을 끊을 수 있었다.

혹시 누군가가 이십 대 때, 또 친구관계나 기타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들이 너의 전부도, 너를 규정하지도 않아. 네가 더 높은 곳으로 가면 얼마든지 더 좋고 너를 아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랬다면, 헛된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다정하고 아껴줄 수 있었을 텐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실 마카오 여행 때, 동생한테 사진 촬영을 많이 부탁했다. 그래서 동생이 많이 짜증 났나 보다. 백화점에 같이 옷 쇼핑 하러 갔을 때도 한 번 갔다 오고 짜증 났는지 다시는 같이 간 적이 없다. 무튼, 그래도 귀여운 내 동생이다. 내 동생이 투덜거리고 싸워서 마카오 샌즈 카지노 근처 한복판에서 싸우고 헤어져 잠시동안 길을 잃었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서 화해하고 우리는 무사히 대구공항으로 돌아왔다. 내 동생이 훗날, "그땐 이런 여행 뭐 하러 왔지? 싶었는데 지나고 나니 누나 덕분에 좋은 여행 했던 것 같아."라고 말해주어서 기뻤다. 동생이 여행을 안 좋아해서 같이 많이 다니진 못했지만, 공기처럼 당연했던 내 동생과 함께 한 추억들이 있다는 것이 무척 감사하다. 이때, 내가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밤 12시까지 일하고 지하철 새벽 첫차를 타고, 기차 타고 대구로 내려온 내 동생과 대구공항으로 가서 공항에서 사이다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비행기를 기다렸다.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이 다 아련한 추억이다. 내 동생은 에버랜드, CGV, 스키장 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너무 기특했던,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마카오에 다녀온 지 벌써 십수 년이 흘렀지만, 내 가방을 메고 함께 마카오와 홍콩 거리를 걷던 그날의 준영이는 내 가슴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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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호텔, 마카오박물관

https://youtu.be/-Qa07EqcDmQ?si=2pu3n9jHZsaqyW9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