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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un 27. 2021

느리게, 한적하게 보내는 오후

여유로운 행복

(몇 주 전에 써 놓은 글입니다.^^)


 때론 계획한 일의 실패가 전혀 다른 기회로 다가오기도 한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란 말처럼 거창하진 않을지라도 꽤 소소한 즐거움들.


 언제나처럼 서울에 가서 책도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아이쇼핑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고요한 것도 좋아하지만 백화점처럼 시끌벅적하고 번잡한 곳도 좋아하기에 내 주말 휴식 코스가 되었다. 그런데!!! 체크카드만 쓰는 데 돈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다른 통장에 돈이 있긴 했지만, 주거래은행이 보이지 않고 통장뿐이 없어서 돈을 옮길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천 원짜리 주먹밥을 하나 사 먹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예정 시간보다 사십 분이나 늦게 왔다. 막 짜증이 났다가도 버스가 도착하니 그제야 화가 풀리고 자리에 앉았다. 집에 도착하면 3시쯤 되는데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실 특별히 할 만한 게 있지는 않다. 늘 그렇듯 도서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오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도서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동화 쓰는 방법> 책을 읽고 나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책을 읽고 싶어 졌다. 그런데 가는 길에 데이지 꽃이며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었다. 청초하게 피어있는 꽃들이 한적한 시골길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사진도 찰칵 함께 찍고 SNS 프로필 사진을 바꾸니 행복했다. 거기다 더해 졸졸 흐르는 시냇물까지! 가히 여기가 지상천국이구나 싶었다. 내리쬐는 햇살, 시원한 물줄기 소리, 소담한 꽃들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한가한 오후가 반짝임으로 물들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나 번잡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느리게 걷는 법은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화려한 네온사인의 높은 빌딩으로 가득 찬 거리를 밤늦게 돌아다니느라 여념 없었던 시간이 무의미해졌다. 그보다는 자주 더, 앞으로 내 시간을 소소한 즐거움과 여유, 생각들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단독주택인 우리 집에는 마당에 아빠가 지어준 원두막이 있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보드게임도 하고 과일도 먹고 공부도 하고 즐겁게 지냈었다. 비록 집에 화재가 나 결국 다 타 없어져 버렸지만 기억의 한 조각을 차지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나에겐 신선들이 천상에서 놀음하던 순간과 비슷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돈과 성공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내몰려 한가롭고 조용한 시간을 잊고 지냈는데 이제 더 자주, 더 많이 느리게 살아가야겠다.






+) 배경 이미지는 프리픽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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