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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은 인간을 낳고,
행운은 괴물을 낳는다.
- 프랑스 격언 -
조망수용이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동시에 이해하는 능력이다. (아이의 사회성- 이영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조망수용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아집, 독단적 시선으로 상대를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무분별한 조리돌림 등을 보면 그 현상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런 집단 린치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 일은 나만 겪는 게 아니어서 조금만 튀어도, 누군가는 하이에나처럼 결점을 노리고 작은 오해를 기회 삼아 물어뜯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의해 이때다 하고 함께 돌을 던진다. 비판적 사고능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것들에 대해서 정식으로 조사해 본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획일화된 정답 찾기를 강요하는 시험 제도에서 비롯된 현상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고소득 전문직이나 명문대 출신 엘리트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인문학과 예술로 교양을 쌓고, 다양한 경험으로 열린 사고를 갖지 않는 이상, 군중 속에선 똑같은 사고방식만 반복된다. 그런 사람들이 집단으로 똘똘 뭉쳐 왕따를 만들고 괴롭힘에 눈 감고 악을 양산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거짓말도 잘한다.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실수로 아이의 도덕성을 재단하고, 인격에 문제 있다고 몰아세우면, 아이는 두려움에 책임을 피하고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된다. 또는 그런 식으로 대우받으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상대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이 받은 대우대로 다른 이의 허물이나 결점에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관용이 부족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따뜻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서두에서 말한 조망수용능력이란, “네 상황에선 그럴 수 있다고” 믿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다. 그 유명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장,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해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말이다.”를 곱씹어보아야 할 것 같다.
교육개혁을 외치는 김누리 교수는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 교육이 파시스트를 대거 양산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 교육자들도 많다고 하지만, 자기 방어에 급급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교육은 생각하는 교육, 비판하는 교육이 사라진 지 오래다. 조금씩 교육과정 내에서 교사 주도 교육과정, 바칼로레아 교육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수능 입시 제도가 건재하는 한, 여전히 정답 찾기 위주의 교육제도에서 벗어나는 건 요원해 보인다.
무분별하게 4세고시니 7세고시니 사교육 열풍에,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입시를 공부한다는 과열된 교육시장에서 정말 교육이 지향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공부란 나만 잘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더불어 함께 잘 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자기 몸사리기 급급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사라져 가고 있는 요즘 시대에 진정한 교육,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https://youtu.be/KZRmQ3D0vN0?si=avGCTXLRp6xKMD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