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흐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20대 초반에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그때 즈음 덕수궁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불멸의 화가, 반고흐> 전시회도 다녀왔다. 시청 앞에서 추위에 떨며 친구들에게 같이 미술관에 가자고 하자 돌아온 대답은 “저런 그림을 왜 보는지 모르겠다.”라는 볼멘소리였다. 그럴수록 나는 더 움츠러들고 내 안으로 파고들었던 것 같다. 왜 내가 친해진 친구들은 나와 다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점차 멀어져 갔다.
내 친한 친구가 그림을 싫어한다고 해서 꼭 내 주변 사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신규 교사 시절, 서울한강호텔에서 진로 직무 연수를 들었을 때 만난 선생님들과 근처에서 열렸던 ‘키스해링’ 전시회에 다녀오기도 했다. 나는 모두가 전시회를 싫어하는 건 아니구나 하고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키스해링은 에이즈로 사망했다. 동성연애자이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뭔가 범접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예술가를 동경하는 나는 그럼 뭘까? 난, 그냥 좀 자유롭고 창조적이고 싶을 뿐인데...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
내가 반고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슬픔과 고독과 우울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슬픔과 고독 속에, 그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처럼 아름다운 별에 도달해 가는 빛이 흐르기에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 연약한 이들에 대한 사랑, 고갱과 싸우면서까지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대한 집념과 고집, 그리고 열정이 고흐 안에 살아 있었다. 그러한 것들이 생생히 살아있는 영혼이란 게 느껴진다. 삶에 대한 열정이 그의 그림에서 타오르는 사이프러스나무처럼, 반짝이는 별빛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내가 알고 있던 고흐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많이 희미해져 갔다. 20대 때 정말 많은 고흐 관련 전시회며 영화, 책들을 봤었다. 그가 자살한 게 아니라 살해당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영화 <러빙 빈센트>의 내용은 충격적이기도 했다. 반고흐의 <노란 방>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내가 삶에 지쳐 슬피 울고 좌절할 때조차 나보다 먼저 인생에서 깊은 쓰라린 아픔을 겪었던, 그럼에도 위대한 화가로 남은 고흐에게 위로를 받은 것이다.
반고흐 인사이드 전을 다녀와서 만든 DIY 반고흐의 방
유럽 여행에서, 런던의 내셔널갤러리, 코톨드미술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등지에서 고흐의 그림을 직접 감상할 수 있었다. 길을 헤매기도 하고, 더위에 지치기도 했지만, 이역만리에서 고흐의 그림을 감상한 보람이 있었다. 한국 전시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흐의 살아있는 영혼과 불꽃이 내게 전해진 기분이었다. 정여울 작가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데 나도 그럴까? 눈물이 나를 위로해 줄까? 또한, 아직 가보기 않은, 고흐의 예술이 가장 빛났던 아를도,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생레미도, 생을 마감한 오베르도 가보고 싶다.
한때 내 아이폰 케이스 그림인 밤의 카페 테라스, 오른쪽은 색연필로 그린 모작
그리고 난 고흐를 생각하면 이제 또 다른 예술가였던 내 동생이 계속 생각난다. 그림과 애니메이션밖에 몰랐던 내 동생이 꼭 겹쳐져 보인다. 죽고 난 후, 전 세계의 별이 된 고흐처럼 내 동생도 영원히 빛나길 바란다. 예술가는 영원히 죽지 않고 모든 이의 가슴속에 남는다.
1학년 제자들의 협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