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하루①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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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는 바티칸시국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최후의 심판 그림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예약해 둔 숙소는 알고 보니 유령 숙소였다. 다른 곳을 알아보려 했지만 성수기라 빈방은 없었고, 그나마 남은 곳은 게스트하우스의 백 배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속상했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 연우는 먼저 베네치아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곧장 기차표를 끊어 베네치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길에 피렌체도 들르기로 하고, 피렌체의 숙소도 미리 예약해 두었다. 드디어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중앙역에 도착하자, 기차 문이 열리며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운하에서 올라오는 물비린내와 에스프레소 향이 뒤섞여 코끝을 자극했고, 사방은 반짝이는 물결로 가득했다. 연우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 황홀해졌다. 여기가 바로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곳인가? 순간, 영화처럼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했다. 혹시 로마에서 숙소를 잡지 못한 건 일종의 세렌디피티, 우연한 행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역 앞에서 포터의 도움을 받아 호텔에 짐을 풀고, 연우는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걸었다. 좁은 골목마다 빨래가 바람에 펄럭였고, 창문에서는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작은 상점에 들어가 챙이 넓은 모자를 고르고 있는데, 옆에서 가방을 고르던 남자와 그만 부딪히고 말았다.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엄마야!”


놀라 소리를 내뱉자, 곧바로 들려온 한국어.


“한국분이세요?”

“어머, 한국분이세요?”


순간 묘한 끌림이 스쳤지만, 이내 스스로를 다잡았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연우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황급히 가게를 나섰다.

그런데 남자가 곧장 연우가 두고 간 모자를 들고 따라 나왔다.


“아니, 모자를 사고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아, 감사합니다.”

“마침 점심시간인데… 식사 같이 하실래요?”

“네?”

“둘이 먹으면 메뉴도 다양하게 시킬 수 있잖아요. 제가 베네치아는 세 번째라 아는 곳이 있어요.”


망설일 틈도 없이 둘은 다리를 몇 번이나 건너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비둘기 날갯짓이 뒤섞여 있었고,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사이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성 마르코 대성당의 황금빛 모자이크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여기예요.”


그들은 아치 아래 자리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 문이 열리자 올리브 오일과 구운 빵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그러나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Are you Jinho?”


남자의 얼굴이 굳었다.


“No, I’m not Jinho.”


호기롭게 이끌던 태도는 사라지고, 그는 서둘러 연우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무슨 일이에요?”

“저… 몸을 좀 숨겨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식사는 다음에 해요. 여기 제 연락처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남자. 연우는 멍하니 서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어 허탈했다.


뭐지? 저 남자? 이름이 진호인가? 연락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기운이 빠져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앞에 웅장한 성 마르코 대성당이 보였다. 향초 냄새와 종소리가 공기 속에 스며들며 마음을 흔들었다.


“주님, 로마에서부터 왜 이렇게 힘든 일들만 반복되는 걸까요…”


여행이란 게 결국 사서 고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마음이 쓸쓸해졌다.

바로 그때였다. 다시 그 남자가 나타났다. 이번엔 두 개의 베네치아 가면을 손에 들고 있었다. 하나는 검은색, 다른 하나는 은빛. 곤돌라 노 젓는 소리와 함께 불어온 바람이 두 가면을 살짝 흔들었다.


“이건 어때요?”


연우는 가면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설렘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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