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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Aug 14. 2021

특기: 멍 때리기

다르기에 아름답다



 ‘멍 때리는 우.’ 4학년 교생실습에서 만난 체육과 동기 오빠는 내 미니홈피 일촌명을 이렇게 지어줬다. 나는 그 전까지만 해도 내가 멍 때린다는 것을 전혀 자각 못했었다. 왜 학교 강의시간만 되면 잠이 쏟아지는지 왜 수업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는지 자꾸만 딴생각이 드는지 의문이 가기도 했지만 그냥 나로선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일촌명으로 친구 신청을 받고 나서 내가 멍을 잘 때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나를 두고 정신의학과에서는 조용한 adhd라고 진단 내리나 보다. 물론 그리하여 나도 병원에 가봤지만 다행히 아니라고 했다. 멍 때리기 대회도 알아봤지만 지방에 있을 때라 참여가 쉽지는 않아서 포기했다. 참가했다면 1등은 따놓은 당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머릿속이 온갖 공상으로 가득 찬 건 여전하다. 빠릿빠릿하고 논리 분석적인 사람들은 태연자약해 보이는 이런 내 모습을 불편해하는 것 같다. 보노보노를 향해 있는 힘껏 성질을 부리는 너부리처럼….


 반대로 나는 나를 매의 눈초리로 주시하는 소위 빠릿빠릿한 여우 같은 사람들이 정말 견디기 힘들다. 어쩜 그렇게 귀신처럼 남의 속마음을 엑스레이 찍듯 들여다보려 하는지… (그런데 사실 안 맞을 때도 많다.) 뭐가 그리 급하고 공격적인 건지… 왜 그리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드는 건지…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라고 말하는 나 같은 사람은 눈이 녹으면 물이지라며 따박따박 따지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힘겹다.


 한 번은 동기 결혼식 장에 갔다가 몇 년 만에 또 다른 동기 언니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 요새 뭐하냐는 질문에 주말에는 클래식 동호회를 다닌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언니는 대뜸 “너 눈치 없이 커플들 사이에 끼어 있는 거 아냐?”라고 쏘아붙였다. 나는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어안이 벙벙했다. 대학생 당시에도 연애는커녕 친구가 남자 친구랑 사라지면 나는 홀로 남아 도서관을 지키던 학생이었다. 그 언니의 무례한 말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너무나 다르다. 그리고 어쩌면 한 번도 서로를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았던 건 아닌가 싶다. 너무나 다른 서로가 자신의 관점으로 상대방을 재단하는 일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신데렐라의 두 언니가 신데렐라의 구두에 발을 욱여넣기 위에 발뒤꿈치를 자른 것처럼 나에게 안 맞는 것들을 억지로 맞추려 하는 것은 고통이며 자학일 뿐이다. 그보다는 서로 다른 발 모양, 크기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닐까.


 어딘가에는 나처럼 자주 멍을 때리고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 물론 이런 부류를 전혀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획일적인 사회에서 튀는 것을 싫어하고 남다른 것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쩌면 70억 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경이롭다. 화폭에 여러 색의 물감이 어우러질수록 더 아름답듯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져서 아름답다는 것을 이해하면 나와 다른 사람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자갈밭의 조약돌이 모두 다 같은 모양이라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세 잎 클로버 사이에서 이따금 보이는 네 잎 클로버가 얼마나 기쁜지... 다양해서 아름다운 것임을 더 많은 사람들이 온몸으로 느끼고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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