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런 실정인데 학교폭력에 대한 조치는 얼마나 잘 해결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직장 괴롭힘도 같은 맥락 아닌가? 한국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가해자를 응징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는 경우가 파다하다. 그런 식으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지속해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심할 경우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간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건, ‘피해자가 이상한 사람이다’, ‘피해자가 배려심이 부족하다.’, ‘피해자가 거짓말쟁이다. ’ 등등이다. 하지만 이건 일방적으로 가해자 중심에서 서사를 부여한 것이고, 정작 거짓말을 하고 배려심이 부족하고 이상한 사람인 경우는 가해자일 확률이 높다. 사람을 따돌린다는 것 자체가 극악무도하고 폭력적인 짓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럼 또 이에 대해 따돌린 적이 없다는, 무적의 논리를 들고 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폭력에서 이는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눈빛, 배척하는 분위기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더더구나 소외되고 고립된 이들일수록 그런 상황에 더 예민하기 때문에 더 쉽게 그러한 낌새를 눈치챈다. 그런데 그에 대해 거짓으로 반박하고 피해자를 피해망상으로 몰며 난도질하는 것은 보통 쓰레기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짓들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인 소시오패스들이 그런 경향을 짙게 보인다.
또한, 아무리 제삼자라지만, 평소 공감능력이 부족하거나 타인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경우, 학교폭력이나 직장 괴롭힘에서 피해를 보기보다 누군가에게 가해를 가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피해자 책임론을 들먹인다. 그들은 누군가를 따돌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폭력에 누군가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타인의 인생을 난도질하면서도 아무 죄책감을 못 느낀다. 그런 사람들을 이성과 감성을 지닌 사람이라도 불러도 될까?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지옥은 9개의 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죄의 종류와 무게에 따라 영혼이 배치된다. 애욕, 탐욕, 낭비와 인색, 분노, 이교도, 폭력, 하느님을 부정한 죄, 사기와 위조의 죄들이 그들의 죄목이다. 아래로 갈수록 죄의 무게가 더 무겁다. 단테는 700년 전, 폭력과 혐오, 배반과 거짓, 실의와 절망이 만연한 시대에 살면서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자 이 대서사시를 썼다. <신곡>은 오늘날에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정작 <신곡>의 지옥에 떨어져도 마땅한 자들이 현실에서 선량하고 올곧게 살아가는 피해자들을 핍박하고도 아무 죄책감을 못 느끼고 2차 가해를 지속하며 죄를 저지르고 있다. 아마 그들은 사기와 위조의 죄를 저지른 자들이 가는 지옥의 8 구역에 떨어지지 않을까.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비록 서럽고 불안 가득한 생활을 해나가지만, 자신의 바른 생각과 올곧은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정의롭게 살아나간다면, 단테가 말한 연옥의 정화를 거쳐 천국에 도달할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악다구니를 펼치고, 거짓과 진실을 호도하고, 혼란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선과 정의를 지키고 바르게 살아가는 자들은 진정한 진리에 도달할 것이다. 그건, 환한 빛으로 둘러싸인 신과의 완전한 합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