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게 뭘까? 몇 년 전에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란 책을 읽었다. 한국 사회는 서로의 진심이 맞닿은, 사랑하는 사이의 결혼이 아닌, 조건 대 조건으로 거래하는 결혼이 흔하다는 내용이다. 그때 난, 정말 이 책대로 주변에 조건 보고 결혼하는 게 많은 걸까?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냐하면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으므로...
하지만 조금 더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에 와서는, 그건 내가 아마도 ‘사랑’이 뭔지 몰라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실제로 누군가와 대화를 해봐도 ‘사랑’에 대해서 잘 안다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물며 단테의 <신곡>에서 인간 영혼이 신적 사랑과 완전히 합일되는 경지인 ‘엠피레오’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더 나아가 아는 걸 넘어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대부분은 조건적인 거래를 사랑이라고 포장하거나 사랑하는 척 흉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때, 우연히 신문기사에서 전쟁의 상흔으로 얼굴이 무너져 내린 신랑 곁을 지킨 신부의 웨딩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때, 이런 게 바로 진짜 사랑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어떤 변화나 장애 앞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
하지만, 진짜 사랑을 알기 위해 일부러 재해나 장애를 겪을 순 없진 않을까.
그러면서 든 생각은, 어쩌면 내가 사랑한다고 믿은 마음 또한 착시나 혼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상대를 A라고 믿지만 어쩌면 그는 B이거나 C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실체를 알고 나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김주원(현빈)은 어떻게 자기가 길라임(하지원) 같은 가난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는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도리질을 해보기도 하고 일부러 매정하게 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어공주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한 철만 사랑하자고. 잠시만 사랑하다 내 곁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져 달라고... 그는 길라임과 연애는 하고 싶지만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며 연애를 제안한다. 자신에게 결혼은 기업 대 기업의 인수합병과 같은 거라며...
조금씩 그에게 마음이 흔들리던 길라임은 큰 상처를 받으며 끝을 알고 시작하는 사랑 따윈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는 그들이 열렬히 사랑에 빠지고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단계에 이른다.
<시크릿 가든>에서 보이듯이 사랑은 어떤 사회적 지위나 계층, 재산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커뮤니티에는 ‘이 조건이면 결혼할 수 있나요?’ ‘이 조합은 잘 어울리나요?’며 자신의 학벌과 재산, 나이, 외모 등을 결혼정보회사에서 등급 매기듯 값을 매겨 전시하는 글이 넘쳐난다. 과연, 그런 계산적인 만남 안에서 사랑이 피어날 여력이 있을까? 사람들은 가난하면 사랑도 새어나간다고 자조 섞인 말로 자신들의 계산적인 속내를 변명해보려고 하지만, 사랑과 조건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설사 조건이 조금 부족해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조건만으로 이루어진 결혼은, 결국 공허함과 허무함, 우울, 결별로 이어진다.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경 없는 결혼생활은, 빈껍데기를 안고 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는 한 여자, 한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건 인생의 사치라고 했다. 이런 사치를 누리는 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사랑이라는 인생의 사치를 맘껏 누리기 위해선, 우리는 무작정 달리다 절벽에서 추락사하는 스프링벅 같은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들이 뛰니깐, 남들이 뛰어내리니깐, 남들이 하니깐 하는 생각으로 따라 하는 삶을 살기보다 주체적으로 나만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 사랑도 트로피 쟁취하듯, 남들에게 내세우고 싶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쫓을 게 아니라, 나만이 발견한 그 사람의 매력을 찾아야 한다. 사랑은, 자랑도, 간판도, 수표도 아니라 오래오래 함께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영혼의 동반자다.
https://youtu.be/3yOJEb9MuFY?si=zRvVdwwaGqYeUr6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