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감성으로 이렇게 곱고 고운 아이다운 심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일까? 김헌수 시인의 동시집, <내 귓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날>은 잃어버린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다락방 한편에 숨겨놓은 보물상자와 같은 시집이다. 그 안에서 디즈니 동화 속 온갖 귀여운 동물과 사물들이 튀어나와 저마다의 인생 연극의 주연이 되어 열연한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순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를 절로 느끼게 된다.
모든 시 한 편 한 편이 주옥같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5편을 꼽아보자면, ‘내 귓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날’, ‘빗소리라도 들었으면’, ‘숲 속 패션쇼’, ‘단짝이지 우리는’, ‘청룡반점’을 소개하고 싶다.
먼저 ‘내 귓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날’은 표제작답게 묘한 감동과 함께 서정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게다가 흰 긴 수염고래의 귀지를 보고 내 귓속에도 들어가 보고 싶다는 아이의 상상력이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다. 나도 마치 어린아이가 되어서 애니메이션 <신기한 스쿨버스>처럼 내 귓속으로 들어가 내 귀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버리게 만들 만큼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뭉클한 시였다.
‘빗소리라도 들었으면’은 특별히 오늘 비가 온 날이어서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우리 학교 양심우산 코너에 있는 우산들이 바로 이 동시 속의 주인공들처럼 느껴졌다. 비가 안 와서 비가 오기만을 간질간질 기다리던 우산들의 저마다의 몸짓들이 올망졸망해서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축축하고 귀찮은 비 오는 날이 형형색색 우산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보고 싶은 날로 바뀌는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숲 속 패션쇼’는 다양한 동물과 곤충들의 특징을 극대화해서 패션쇼의 아이템으로 활용한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달팽이는 금빛 오르골을, 노루는 무지개 빛깔 턱시도를, 고슴도치는 바늘 쌈지를 걸치고 나왔다는 표현이 재밌다. 특히 땡땡이치마 입은 무당벌레라는 표현은 앞으로 무당벌레를 볼 때마다 떠올리게 될 듯하다.
‘단짝이지 우리는’은 공생관계를 보여주는 시여서 좋았다. 외롭게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이 동시는 함께 사는 정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빠와 축구공, 엄마와 휴대폰에 이어, 할아버지 잇몸에 붙어있는 틀니는 가족들의 삶을 유쾌하게 그려주고, 혹등고래 등의 따개비와 흰동가리와 말미잘의 공생관계는 자연과학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가 그려져서 유익하다. 화룡점정으로 우리 가족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 우리 집까지. 쉽게 지나치곤 했던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따스한 동시다.
마지막으로 ‘청룡반점’은 김헌수 시인만의 개성이 잘 드러난 시여서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청룡반점은 물짜장으로 유명한데, 생전 처음 들어본 물짜장이란 말에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전북지역에서 유명한 향토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시에는 이렇게 시인만의 특색이 잘 드러나면 고유성이 더 짙어지고 매력이 배가가 된다고 생각된다. 조만간 시인이 살고 있는 전라북도에 가게 된다면 물짜장을 꼭 사 먹어야겠다.
시끌벅적하고 복잡다단한 일상 속에서 이런 동시집을 읽고 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말랑말랑해져서 순수함을 회복하는 느낌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시집이지만 어른들도 창조성과 감수성을 기르고 어린 시절의 마음을 회복하는데 크나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김헌수 시인의 동시집, <내 귓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날>이 오래오래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독자들은 잃어버린 유년의 감성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