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으면 더 아름다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어.

by 루비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은 바로 그날 이후였다. 나는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가끔 대학 동기 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너는 걱정이 그것밖에 없어서 좋겠다.”이런 반응이 되돌아왔다. 내 고민은 참 보잘것없다는 생각에 점점 더 침묵하게 된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만 해도, 가만히 몸만 움직여도 귀엽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당시 나는 정말 내가 타고난 귀여움을 지닌 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서 되돌아보니 내가 가진 귀여움은 타고난 천성이 아니라 나의 생존전략이었던 것 같다. 귀엽고 사랑스럽게 웃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어린아이. 그게 내 정체성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용서한다. 나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과거를. 난 그저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음에도 누군가는 공주병이다, 이쁜 척한다라며 별별 험담을 수군거렸다. 그때는 무조건적으로 그들이 밉고 서글펐지만, 이제는 나도 되돌아보려 한다. 어쩌면 내가 나도 모르게 정말 그들에게는 척하는 것처럼 비쳤을 수도 있음을. 내가 어딘가 평범하지 않았음을.


아무도 나를 모른다. 그런 오해와 질시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철저히 오해되고 거짓으로 소모되고 숨 막히는 배척 속에 갇혀 살았다. 내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습지 소녀, 카야처럼 철저히 이방인으로 따돌림당하고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사실 세상의 도움은 그리 받을 수 없었다. 경찰도, 직장동료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그리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어쩌면 1,2촌인 가족을 제외하고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서러웠지만, 남탓하지 말라는 세상의 경고처럼 내가 감수해야 할 나의 업보였을지도 모른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지금 마흔을 앞둔 겨울의 한복판에 서있다. 나의 20대는 배척과 고립, 따돌림 속에 철저히 은둔의 세월을, 30대는 20대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데 모든 세월을 다 보냈다. 하지만 난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내가 남들보다 상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감정의 폭이 더 넓어졌으니깐.


그리하여 앞으로 나의 미래는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잠시 길을 잃는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곳에 못 가지 않듯이 말이다. 오히려 우리는 길을 잃었을 때, 새로운 골목길에서 더 많은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곤 한다. 바로 내 인생이 그러했다.


정말 이상한 일들을 많이 겪은 나였다. 하지만, 난 <창세기>의 요셉처럼,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처럼 무언가 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사가 있지 않을까 하곤 상상하곤 한다. 어렵고 힘들고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견뎌왔지만, 점차점차 앞으로의 내 인생은 더욱더 빛나리라고 기대한다. 그 끝에서 미소 지으며 과거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도록 늘 나를 가다듬는 내가 되어야겠다.


Image by Freep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