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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Nov 14. 2021

첫사랑 그리고 운명이란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보고

 열아홉 살 대학생 새내기 시절 봤던 소설과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문득 그때 느꼈던 투명한 슬픔과 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소설과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당시 동기 여자와 책과 영화의 다른 점에 대해서 설전을 벌였던 기억도 떠오르고 영화가 소설을 많이 각색했음을 다시금 상기하게 됐다. 소설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영롱해서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면, 영화는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리츠코를 등장시켜 아키와 사쿠의 사랑을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해보게 됐다. 이 글에서는 소설보다는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중심으로 감상을 써보고자 한다.


<스포 있음-!>     

 아키는 사쿠가 장난스레 라디오에 보낸 사연 그대로 정말 백혈병에 걸리고 만다. 여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죽는 레퍼토리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여서 너무나 식상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영화 속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아키와 사쿠의 순수한 첫사랑이 부러우면서도 죽음으로 이별할 수밖에 없었음에 함께 눈물짓다가 사쿠 옆을 지키게 된 리츠코를 보며 운명에 대한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아키는 사쿠에게 보낸 마지막 테이프에서 자신의 재를 호주 울룰루 바람에 뿌리고 사쿠 너의 삶을 살아가 달라고 부탁한다. 비록 그 마지막 테이프는 십수 년이 지나서야 사쿠에게 전달되었지만 그 매개인이 리츠코라는 점이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진다. 리츠코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첫사랑이 한때 병실에서 알게 된 친한 언니의 남자 친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만다. 고등학생이었던 연인을 연결해주는 사랑의 전령사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운명에 흐느끼며 갈등한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한 사쿠는 리츠코에게 함께 아키의 마지막을 정리해주자며 호주 여행을 제안한다. 둘은 호주 울룰루 근처 한 언덕에서 아키의 재를 바람에 날리며 새로운 출발을 예고한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리츠코가 영화에 등장하면서 첫사랑을 다룬 소설에는 없는 또 다른 주제가 전면에 부각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운명. 리츠코가 아키와 사쿠의 사랑의 전령사였으며 후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쿠의 연인이 된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지 않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사쿠는 아키의 죽음 이후 오래도록 과거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제 그것을 극복하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줄 연인이자 미래의 배우자는 리츠코인 것이다. 리츠코는 자신이 아키와 사쿠와의 마지막을 갈라놓았다고 말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어쩔 수 없었음을, 비록 십수 년이 지나서야 테이프를 전달했지만 결국 리츠코가 없었다면 아키와 사쿠의 마지막을 정리할 수도 없었음을 생각해보면 리츠코의 존재는 무게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호주 울룰루 여행을 마지막으로 사쿠와 리츠코는 둘만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운명이었음을, 그 둘도 새롭게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살면서 이별이든 사별이든 또는 이혼이든 여러 가지 이유로 연인과 헤어져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 괴로워도 시간이 지나면 그 아픔 또한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모든 것 또한 내 삶의 지나가는 과정 중 한 부분이었음을, 우리는 그 아픔 속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배우며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가는지 모르겠다. 사랑이란 하면 할수록 좋은 것, 우리에게는 운명의 상대가 어딘가에 있음을 깨닫는다면 실연의 상처는 금세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첫사랑과 운명의 상대를 소재로 원작 소설을 아름답게 각색한 최고의 멜로 영화였다.




https://youtu.be/6gMark6SR-w 영화 OST 히라이켄의 <눈을 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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