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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Dec 11. 2021

온전한 나로서

아픔, 고독, 사랑

 추억이 많다는 건, 고난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나에겐 처음으로 갔던 일본 후쿠오카 여행, 그 다음해에 갔던  홍콩과 마카오 여행, 그리고 처음 직장생활을 하고 갔던 일본 도쿄와 하코네 여행, 그리고 오랜 시간 벼르다가 가게 된 유럽 여행의 순간이 내가 힘들 때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어떤 드라마에서 많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는 대사가 나왔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로 나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소설 <태양의 아이>에서도 비슷한 구절을 발견했었다.


쓰라린 일을 당해본 사람이 쓰라린 일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 아무리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도 쓰라린 일을 당한 적이 없는 사람은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는 없는 거다. - 후짱


 어린 왕자는 너무 쓸쓸한 날에는 해가 지는 것을 마흔네 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누군가에게는 쓸쓸하단 말이 야멸찬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경험과 사고의 틀 안에서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순간을 마련해준다.


 무엇보다 지금은 문득 로마에서의 일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 내내 거의 한인민박 집에 머물렀던 나는 민박집 사장님과 테르미니 역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나는 역을 착각해 티부르티나 역에 가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지 않는 사장님을 기다리며 카페에서  외국인 남자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순간에 우리는 한참을 웃음과 리액션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라면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인데 낯선 이국땅에서 서로의 어떤 타이틀도 모르기에 순연해질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인가보다. 내가 살고 있는 곳, 내가 일하는 곳, 내가 속해있는 곳에서 우리는 나이, 직업, 경제력, 집안 환경, 학벌, 그밖에 어떤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상대방을 잘 알지 못함에도 단순히 직업이나 지위만으로 호감을 가질 수도 있고,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 다른 조건들로 인해 찬밥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이 내는 생채기가 우리를 끝없는 아픔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지만, 바로 그 지점에 해답이 있다. 우리는 온전한 나로 서야 한다는 것을.


 머리가 복잡할 땐, 여행을 추천한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 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번잡한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추구하는 삶은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다. 그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던질 때 하나의 인격과 인격이 진실되게 만날 수 있으며, 비로소 상대의 아픔까지 껴안을 수 있게 된다. 아픔과 고독과 사랑은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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