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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Sep 11. 2021

상처 받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

 가끔 희망이라는 말이 구역질 날 때가 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는 모든 죄악이 빠져나가고 희망만이 남았다고 하지만 희망을 꿈꾼다는 거 자체가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말의 다름 아닌가. 물론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을 꿈꿀 수 있고 매일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 희망이 왜 이렇게 잔인하게 느껴지는 걸까?


 긍정, 파이팅, 힘내세요! 차고 넘치는 응원의 말들이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현실은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고 도대체 어디서 삶의 즐거움을 찾느냐, 행복을 찾느냐라는 생각이 엄습해올 때가 있다. 우리는 왜 사는가? 다시 이 질문을 바꿔본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글을 쓰면서 내 아픔이 희석됨을 느낀다. 조금씩 고통이 줄어듦을 느낀다. 삶이 지옥 같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평안하다고 느끼고 있다. 완전한 행복은 아니어도 불행한 고통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증을 느낀다. 정말로 삶이란 게 뭘까? 나는 왜 사는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차갑고 서로의 행복을 전시하려고 애를 쓸까? 그렇게 행복하고 충만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무시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인터넷 상에서 악성 댓글로 유명인을 조롱하고 길거리에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리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글을 쓰는 시간이 좋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가다듬을 수 있게 된다. 가끔 오늘처럼 절망의 심연으로 내려가 한껏 우울한 글을 토해내는 것도 좋다.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뿐인데... 우리에겐 주어진 해야 할 과제가 왜 이리도 많은지... 밤하늘에 별을 보고, 가족들과 오순도순 식탁에 모여 정다운 식사를 하고, 길가에 이름 모를 들풀을 감상하고, 개울을 유유자적 흐르는 오리들을 감상하는 일, 이런 일이 왜 이다지도 힘들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문명사회의 일원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스펙을 쌓는 일에 전력 질주하며 살고 있다. 


 꿈을 꾼다. 그리운 그 시절, 정지용의 향수라는 시의 후렴구처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리운 나의 어린 시절, 유년 시절의 행복, 자연의 아늑함, 아름다움. 그 보석처럼 빛나던 시절이 그립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새 또다시 성공을 향해가는 고속열차에 올라타 바쁘게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겠지.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 다들 열심히 살아가지만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 그냥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쉬어가고 싶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모두가 꼭대기를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에 조금은 느리게 살고 싶다. 천천히 살고 싶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나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또다시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나를 채찍질한다. 어쩔 수 없이 시대의 물줄기에 몸을 던진다. 그 속에서 나는 허우적거린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세찬 강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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